Jailbreak
"The biggest communication problem is we do not listen to understand. We listen to reply." (Stephen R. Covey)
나 자신을 스스로에게 과시하는 사람은 없다.
글로비스에서 사업부장을 맡게 되면서 멤버들이 200명에 육박했다.
어차피 사업부장이 한 명 한 명 직접 다 케어할 수 없으니
실장, 팀장 등 조직장들만 잘 챙기라고 조언을 주신 분도 있다.
팀원들은 직접 챙기지 말고 조직장들이 챙기게 하라고.
그게 더 건강한 조직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취지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부장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다.
무리가 되더라도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다.
1 on 1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분들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전체 멤버들을 한 턴 도는데 2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4명씩 조를 짜서 화요일, 목요일마다 Tea Time을 하기로 했다.
기획팀 담당자가 이 시간을 SI-ESTA라고 이름 지었다.
SI사업부 점심 후 Tea Time이니 센스 있는 이름이었다.
SI-ESTA의 Rule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조를 짜는 Rule이었는데
매니저는 매니저끼리, 책임은 책임끼리 4명을 한 조로 하되
각 멤버들은 모두 서로 다른 팀에서 구성할 것.
나와 알아가는 것도 있지만 서로끼리도 알아가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대화 주제에 대한 Rule이었는데
처음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짧게 자기소개로 시작한 후
끝나면 의식의 흐름대로 프리토킹을 하는데
어떤 주제도 상관없지만 업무 이야기는 하지 말 것.
MBTI가 뭔지, 취미로 회사 내 동글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나 Netflix 시리즈는 뭔지,
가족이나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아이 키울 때 힘든 게 뭔지,
커서 뭐 되고 싶은지...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가능한 모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고
그날 이야기 나왔던 것들은 꼼꼼히 메모하여 기억하려 했다.
지방 사업장에 계신 분들을 제외하고
본사 멤버들과 한 턴을 도는데 거의 8개월은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SI-ESTA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서로를 알아가는 건 너무 좋았지만
한 시간 반의 시간 동안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더 많이 들어야지 해도
끝나고 나면 오늘도 말을 많이 했네 하며 후회하기 일쑤였다.
고민해 봤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색한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다.
잘 모르는 다른 팀 사람들과 모여 앉아 사업부장과 Tea Time을 한다.
모인 4명 어느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떼기 쉽지 않은 세팅이다.
왠지 내가 그 어색함을 깨 줘야 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게 되었다.
어김없이 후회로 이어졌다.
또한 마음 한 켠으로 이번 기회에 나를 많이 오픈하고 보여줘서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럴수록 그들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경청'에 대해 그렇게 많이 배우고 신경 쓰고 노력했건만
실제 생활에서 경청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누구보다 더 잘 들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공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겸손의 필요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경청이란
잘 듣는 것이다.
단지 귀를 열고 듣는 행위가 아니라
이 대화를 통해 뭔가를 발견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몸에 힘을 빼고 앞으로 살짝 기울인 채 눈을 마주치며 최대한 집중하는 자세다.
경청은 귀를 열고 듣는데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열어 상대에 오롯이 집중하는데서 시작한다.
경청을 잘하기 위해서는,
침묵을 견디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말할 것이 없는 게 아니다.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할 뿐이다.
그게 마음이든, 물리적인 장소든, 대화하는 분위기든
기꺼이 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고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그 또한 내 탓이다.
경청을 잘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나를 꾸미려고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 자신을 스스로에게 과시하는 사람은 없다.
타인에게도 그러해야 한다.
'언제쯤 어떤 말로 멋지게 받아칠까?'
'이쯤에서 내가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 인사이트 있어 보이겠지?'
'처음엔 잘 들어주다가 적절한 때 내가 결론을 내야지.'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고 듣는 게 아니라
받아치려고 듣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로 상대를 찍어 눌러서
나를 더 돋보이게 하려고 듣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지식을 자랑하려는 무의식 중의 거만에서는
결코 경청이 나올 수 없다.
경청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통해 부족한 나를 채우겠다는 마음.
기꺼이 더 좋은 내가 되겠다는 겸손에서 경청이 나온다.
대화 중에 전엔 모르던 지식을 얻게 되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뭔가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때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진정 경청했는지 아닌지...
많이 배우고 다양하게 경험하여
아는 게 많아지고 깊이 깨닫게 된다고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모든 걸 다 알거나 모든 걸 다 깨달을 수 없고
내가 얻은 지식과 깨달음 역시 그때 처한 입장에서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
내 입장에서 사실이고 내 경험으로는 분명하더라도
누군가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
한 호흡만 참고 들어줄 수 있는 것.
강요하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것.
뭔가를 많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분명 해지는 것은
내가 다른 뭔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숙함이고
경청은 성숙함의 이면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