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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Apr 30. 2024

원더풀 라이프

Jailbreak

“Be happy for this moment. This moment is your life." (Omar Khayyam)


당신 기억 속의 나, 아직도 사랑입니까?


2000년대초 극장가에 한 일본 영화가 개봉을 했었는데
포스터의 카피 하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더풀 라이프』

이 영화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다.
커리어를 TV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시작한 만큼 이 영화도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나의 궁금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가기 전에 7일간 머무르는 림보.
거기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인생의 '한 순간'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렇게 선택된 순간은 림보의 직원들에 의해 사실적으로 다시 재현이 되고
망자들은 인생의 나머지 기억들은 모두 잊고
그 행복했던 기억 하나만을 가지고 떠나게 된다.


영화는 잔잔하게 진행이 된다.
출연진의 일부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그 질문을 받고 대답한 일반인들이라고 한다.
조금의 극적인 요소도 없이 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에 집중한다.


망자는 다양했다.
디즈니랜드에서 친구들과 스플래시마운틴을 타고 내려오던 순간을 이야기한 여고생부터
소녀시절 빨간 구두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순간을 선택한 할머니.
젊었을 때 파일럿 훈련을 하며 딱 한번 비행기를 운전한 적이 있는데
하얀 구름 사이를 헤치며 지나던 그 순간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던 한 중년남자도 있었고
중학생 시절 기차 맨 앞자리에서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맞바람을
온몸으로 맞던 그 순간을 선택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20대에 죽은 한 청년은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가방에 달고 다니던 인형의 방울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면
늘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한 40대 남자는 자기 인생이 너무 불행하여 한 순간도 기억하고 싶지 않고
모든 기억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고
결국 5살 때 좋아하던 인형을 안고 벽장 안에 숨어있던 그 기억을 선택하여
컴컴한 '어둠'의 기억만을 가지고 떠나가기도 했다.
모두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정말 내가 관심이 갔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와타나베 이치로. 71세.
철강회사 임원으로 근무하며 정년퇴직을 했다.
자녀는 없었지만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고
결혼생활도 행복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림보 직원들의 도움으로 71년 인생을 비디오로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때, 림보 직원의 말.
"기억과 기록은 다르니, 기록은 참고만 하세요."

기록은 사실이지만 기억은 진심이다.

내가 느낀 느낌, 그 순간의 내 소중한 것들이 투영된 진심.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기록보다 기억이 소중하다.


71년 삶.
71개의 비디오를 다 보고 난 후 와타나베의 말.


"젊었을 때 나는 늘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하곤 했지요.
내가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직장에 취직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가 죽기는 싫다고.
하지만 실제 내 삶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해서 인생에 자신감도 있었고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나 생각했었는데
그만그만한 학력에, 그만그만한 직장, 그만그만한 결혼, 노후...
막상 돌아보니 그만그만한 인생이었네요."


남들이 볼 때는 가장 성공한 인생이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어느 한순간을 고를 수 없는 그만그만한 인생.

가슴이 먹먹했다.

혹시 내가 그러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되었다.


나라면 어떤 순간을 선택할 것인가?

묵직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나 스스로 대답을 하면서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인생의 행복은 아주 소소한 것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중 소소한 즐거움과 기대감, 해방감 같은 것들이 모여
문득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순간이라는 것이다. 

학생이라면, 여름방학을 앞두고 기말고사 마지막 날 시험을 모두 끝낸 후

집에 왔더니 아무도 없어서 혼자 선풍기를 틀어놓고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다가
너무 졸려서 영화를 틀어둔 채 낮잠을 청하던 그 순간의 해방감 같은 거...
연인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남몰래 열심히 준비한 로맨틱한 디너 후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서로의 손이 살짝살짝 스칠 때
손을 잡을까 말까 온 신경이 곤두서서 솜털까지 느껴지던 그 설렘 같은 거...

부모라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서 한참을 깔깔거리며 놀다가

밤이 되어 돌아오는 길에 지쳐 쌔근쌔근 잠이 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몸은 피곤하지만 서로 말없이 쳐다보며 빙긋이 미소 짓게 되는 흐뭇함 같은 거...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여유.
그것들을 감사하며 만끽할 수 있는 습관이 필요하다. 

  
둘째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는 그만그만한 삶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모든 일은 단 한 번만 벌어진다.
지나치게 욕심을 내며 자기 자신을 코너로 내몰 필요는 없지만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계를 모른 채 멈추는 건 불행한 일이다.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인생의 그 지점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을 퍼부어서
지나가 버린 후에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이만하면 됐어'가 가장 위험하다.
애써 다치지 않으려고 몸을 바짝 엎드리며 산다고 한들
그래서 인생의 굴곡 없이 평탄하게 산다고 한들    
최선의 경우,
무덤에 상처 없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위 두 가지 생각이 상반된 모순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해 보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 마지막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뭔가에 푹 빠져 볼 필요가 있다.
안전하게 밋밋하게만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을 한번 엎질러 봐야 하는 것이다.
단 행복은 그 끝에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 험난한 과정의 소소한 일상에 숨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걸 발견할 마음의 자세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서 편하게만 지내는 일상에서는
어떤 것도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은 아무 걱정이 없고 불안함이 없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거대한 질문 앞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고개를 내밀 자리는 없다.
내가 지구에서 보낸 삶이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흔적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니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미국 교수님들의 강의가 떠올랐다.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한참 듣기만 하다가 말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요."

Netflix를 보니 이 영화가 올라와 있었다.
20여 년 전에 봤던 영화인데 너무 반가워서 다시 보게 되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Theme을 가지고 어쩌면 이렇게 영화를 재미없게 만들 수 있는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되뇌어 보지만
백번 양보해서 나는 이해를 하더라도 차마 타인에게 추천할 수는 없다.
절대 비추다. 궁금해도 보지 마시라...
You've been warned.
  

(Interview,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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