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A user interface is like a joke. If you have to explain it, it’s not that good." (Martin LeBlanc)
귀에 꽂자마자 연결이 되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
오래전 MIT Media Lab에 affiliate으로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연구그룹들을 돌며 교수님,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의 철학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때 얻었던 수많은 영감 중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인사이트가 하나 있다.
Function-oriented VS. Object-oriented.
기능 중심 사고와 목적 중심 사고.
사람들은 사업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고객의 니즈로 시작한다.
그것을 어떻게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신기술일 수도 있고 어떤 서비스일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구현하여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켜 준다.
니즈가 만족된 고객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사업의 패턴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처음 시작이었던 고객의 니즈는 ‘목적'이 된다.
이를 만족히켜주기 위해 개발한 신기술이나 서비스는 '수단'이 된다.
그 둘의 차이를 인식하고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처음으로 '전화기'라는 게 나왔을 때를 생각해 보자.
다른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할 필요는 늘 있어왔다.
처음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물리적으로 이동을 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기'라는 게 나왔다.
안방에 가만히 앉아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멀리 있는 이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목적'을 직접 가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생겼다.
안 되던 것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전화기가 흔해지고 통화가 당연해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알고 보니 당시 전화기라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불편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전화를 걸면 상대의 상황도 모르는 채 일방적으로 방해를 해야 하고
소리도 "따르르르릉~" 엄청 위압적이고 시끄러웠다.
통화가 연결되면 통화하는 동안 전화기 앞에 내내 붙어 앉아 있어야만 하고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받으시면 덜컥 겁부터 났다.
소리는 들리지만 실제감이 없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한 시간을 통화하더라도 끊을 때는 늘 이렇게 말했다.
"자세한 건 내일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멀리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로운 경험이어서
처음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신비감'이 사라진 후에는 '사용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신기술들이 발전하면서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한다는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성이 더 좋은 '수단'들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위협적인 소리를 해결하기 위해 진동 옵션도 생겼고 노래로 신호음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통의 공간적 제약을 없애기 위해 휴대전화도 나왔고
통화에 실제감을 주기 위해 영상통화라는 것도 나왔다.
요즘엔 바로 전화하기보다는 먼저 톡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 되었다.
소통의 공간적 제약은 해결을 하면서도 상대의 시간적 선택권을 존중하게 된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을 처음으로 제공하여 신비감을 주는 것.
신비감이 사라진 후 사용성을 개선하여 더 편리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신사업 기회였다.
고객들은 자기가 편리한 것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법이다.
예전에 빌게이츠는 매년 생각주간(Think Week)을 갖는 걸로 유명했다.
생각주간이 시작되면 그는 혼자 별장에 들어가서 읽기와 생각하기에만 몰두했다.
하루 두 번 식사를 챙겨주는 도우미 외엔 누구와도 연락이 안 되고
오롯이 홀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을 실행할지 계획에 집중했다.
한 번은 그가 생각주간 후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은 게... 그동안 우리는 이렇게 해왔습니다.
음악을 디지털로 압축을 하고, CD라는 콘셉트를 만들고 규격화하고,
압축된 음악 정보를 빛을 쏴서 CD에 입력하여 음악 CD를 생산하고,
광 픽업 기술을 개발하여 CD를 읽어내는 플레이어 기기를 만들어 생산하고,
고객들은 음악 CD와 CD 플레이어 기기를 산 후 음악을 재생시켰죠.
단지 노래 하나 듣고 싶었을 뿐인데..."
음악을 듣고 싶다는 욕망은 '목적'이다.
하지만 CD, CD 플레이어와 같은 Medium은 목적이 아니다.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가능한 최적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당시엔 아무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음질의 음악을 들으려면 CD라는 Medium이 당연히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성이 더 좋은 Medium이 나오는 순간 과거의 Medium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MP3가 나오자 아무도 CD를 듣지 않았다.
지금은 그 마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트리밍으로 바로 들으면 되기 때문이다.
'목적'과 직접 관련 없는 Medium은 없애는 게 최선이다.
기술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을 땐 현재 수단이 최선인 것 같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더 단순화하거나 궁극적으로 없앨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의 '수단'이 된다.
사용성 측면에서 최후의 승자는
'수단'으로서의 Medium은 없애고 '목적'만 남기는 것이다.
어떤 편리한 수단도 없는 것보다 편하지는 않다.
AirPods를 사서 언박싱을 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박스를 뜯고 이이셋 하나를 귀에 꽂자마자
내 iPhone과 바로 연결이 되면서 Music 앱이 실행되었다.
놀래서 이어셋을 빼자 실행되던 Music 앱이 멈춘다.
이어셋을 다시 끼자 음악이 연결 재생된다.
블루투스 헤드셋 비즈니스에 직접 몸 담았던 경험으로는 이건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어떻게 블루투스 페어링도 따로 안 했는데 내 폰과 연결이 되나.
어떻게 실행시키지도 않았는데 Music 앱이 자동으로 뜨나.
난 그냥 이어셋을 빼서 귀에 꽂은 것뿐이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난 Apple이 AirPods를 만들면서
Object-oriented 개념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이 AirPods를 사는 목적은 99% 음악을 듣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폰에서 블루투스 연결을 켜고, 블루투스 이어셋을 찾고, 폰과 이어셋을 연결하고,
그다음에 Music 앱을 켜서 음악을 듣는 과정이 필요했다.
회사는 각 과정을 하게 해주는 '기능'(Function)을 제공했다.
그 기능을 활용하여 고객들이 직접 '목적'(Object)을 달성해야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기능들은 음악을 듣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필요낭비 '수단'일 뿐이다.
Apple은 그 모든 수단을 없애고 바로 '목적'을 달성시켜 줬다.
귀에 꽂기만 하면 그냥 음악이 귀에 들리도록 해줬다.
내가 어떤 수단도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정도의 완성도 있는 MOT(Moment of Truth)를 한번 경험하면 오랫동안 이 회사를 떠나기 어렵다.
마케팅을 해야 브랜드가 아니라 이런 게 진짜 브랜드다.
기술 신사업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
불가능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처음으로 주어 신비감을 줄 때.
신비감이 사라진 후 불편함을 해소하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때.
그리고 '목적'과 직접 상관없는 수단을 제거해 줄 때.
첫 번째와 두 번째도 의미 있는 사업이지만
궁극적으로 세 번째 사업이 나오면 첫 번째, 두 번째 사업은 수명을 다한다.
수명이 있다는 건 기술 사업의 숙명이다.
당신의 신사업은 어떤 부류인가?
Function-oriented : '기능'에 집중하여 수단을 제공하는가?
Object-oriented : '목적'에 집중하여 수단을 제거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