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The heart of the giver makes the gift dear and precious." (Martin Luther)
활을 있는 있는 힘껏 당기는 순간 부러질 것 같아 순간 등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얼마 전 파리 올림픽에서 한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태국의 한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 2연패를 하는 순간 매트 위에서 스승님께 큰 절을 하고
스승님도 함께 맞절을 하며 축하해 주는 사진이었다.
그날까지의 땀과 노력, 사제지간의 존경심과 사랑이 느껴져서 보는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난 '선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LG 오픈이노베이션담당시절, 꾀나 많은 외부 인사들의 방문을 호스트 해야 했고
회의 준비와 함께 빠지지 않는 게 선물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그 선물이라는 게 참 어려웠다.
잘 주면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괜히 사서 욕을 먹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선물을 선택하는 기준이
상사에게 욕 안 먹고 손님들에게 욕 안 먹는 '그럴듯한' 것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는 '무난한' 선물이 좋은 선물이었다.
그런데, 현대글로비스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다.
멤버들이 선물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되었다.
태국 신설법인을 만들고 3자물류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건 단연 태국 재계 1위인 CP그룹과의 인연이었다.
과거 다른 기업들도 CP그룹과 협력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행히 글로비스는 CP의 키맨들과 수년에 걸쳐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특별히 신경 썼던 것들이 진심 어린 선물이었다.
딱딱하던 비즈니스 관계를 뚫기 위한 노력과 병행하여
매번 특별한 의미를 담아 선물을 하였는데 그들의 마음을 여는데 도움을 주었다.
일상적인 방문 시에는 카운터파트 담당자들에게 소소하지만 개인적인 선물들을 했다.
자녀들을 위해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K컬처 선물들을 주기도 했고
아내들을 위해 K뷰티 화장품 세트를 사다 주기도 했다.
한 번은 태국에서 한국의 딸기가 인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현대백화점의 딸기를 한 박스 공수해 가져다 주기도 했다.
비싸고 대단한 선물보다 때로는 이런 소소한 선물들이 더 친근감을 준다.
부담 가질 정도가 아닌 일상적 선물을 반복해서 전달함으로써
그들과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서는 친구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키맨 중의 하나인 CP그룹의 부회장님께는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는 선물을 했다.
먼저 그에 대해 열심히 조사를 했다.
그는 바둑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다.
태국의 바둑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500만 명의 태국 바둑인구를 만들어 냈는데
그는 '바둑을 잘 두면 일도 잘할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 덕분에 태국에서는 아마추어 3단이면 일류대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고
아마추어 1단이면 대기업을 골라서 취업할 수도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CP그룹의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바둑을 두면서 면접을 했다는 일화도 유명했다.
그의 무한 바둑사랑에 착안한 우리 멤버들은
수년 전 CP그룹과 첫 협업 기회를 틀 때 원목으로 만든 최고급 바둑판을 선물했다.
그는 단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본인의 개인적인 열정을 알아봐 주고
그 무거운 것을 어렵게 태국까지 공수해 준 우리의 정성에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몇 년 뒤 결실을 맺어 양사 간 포괄적 협력을 약속하는 MOU를 하기로 했는데
그 준비를 위한 사전 미팅 시 한국에서 공수한 프리미엄 바둑돌을 선물했다.
지난번에 드렸던 바둑판에 어울리는 최고급 바둑돌이라고 설명을 드렸다.
예전의 선물도 리마인드 하면서 다시 한번 그의 바둑사랑에 어필할 수 있었다.
몇 달 후 태국 현지에서 MOU를 체결하게 되었다.
CP그룹의 부회장님과 함께 회장님과의 만찬도 예정이 되어 있어서
이번엔 회장님과 부회장님 두 분의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멤버들은 의미 있는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계속했다.
결국 부회장께 이번에는 한국 태권도복을 선물하기로 했다.
2021년 도쿄에서 태국 역사상 최초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는데 종목이 태권도였다.
주인공은 위 사진 속의 태국 태권도 영웅 '파니팍 옹파타나키트' 선수였다.
그 선수의 코치가 '타이거최'라는 한국인인데 22년간 태국에서 태권도를 지도해 왔고
결국 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를 길러내서 태국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마치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감독님 같은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얼마 전 파리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사진처럼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우리는 선물을 위해 고급 원단으로 태권 도복을 맞춤 제작하였다.
양쪽 팔에 한국, 태국의 국기를 새겨 넣고 가슴에는 부회장님의 이름을 수놓았다.
그 도복을 선물로 드리면서 말했다.
"한국인 코치와 태국인 선수가 만나 영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낸 것처럼
글로비스와 CP가 만나 역사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 보자는 뜻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는 의미 있는 선물에 감동하며 그 뜻을 잊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CP그룹 회장님께는 양궁 활을 선물하기로 했다.
한국 양궁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이다.
하지만 한국양궁협회 회장님이 현대차그룹의 회장님이고
국대 선수들의 양궁활이 현대차 연구원들 기술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정말 국대선수들이 쓰는 활을 하나 수배했고,
충북 진천 선수촌까지 직접 내려가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산선수, 오진혁선수의 친필 사인까지 활에 받아 왔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활이 무기류에 해당되어 비행기에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거였다.
우리는 활을 분리하여 두 명으로 나눠서 각각 반씩 가지고 비행기를 탔고
행사 전 날 호텔방에 모여 활을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할 줄 알아?"
"글쎄요. 유튜브에 많이 나와 있다고 해서 보면서 해보려고요 상무님"
"우리 이거 조립하다가 부러지면 진짜 끝장이다. 대안이 없어. 잘 좀 해보자..."
두 개를 체결하려고 끝까지 힘을 주어 휘었을 때 정말 부러질 것만 같았다. 등에 땀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겨우 조립에 성공하는 순간 호텔방에서 우리는 환호했다. 그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다음날 사장님을 모시고 CP그룹 회장님과 만찬에 가서 선물을 전달하며 말했다.
"세계 최강 한국의 양궁 뒤에는 우리 현대차그룹의 기술력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CP그룹을 돕겠습니다.
양 그룹이 협력하여 한국 양궁 못지않은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를 만들어 보십시다."
CP그룹 회장님도 이런 선물은 처음이라고, 사려 깊은 선물의 의미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는 바로 그 만찬 장소 가운데 벽의 한 중앙에 그 활을 배치하여 전시하게 하셨다.
선물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날 만찬은 매우 근사했다.
글로비스에서 이런 경험들을 하며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선물은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쯤 써보고는 싶었는데 꼭 필요가 없어서 혹은 너무 비싸서 사지 못했던 것.
내 돈 내고 사기는 그렇지만 누가 선물로 주면 정말 감사히 한번 써보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이 좋은 선물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두어도 어차피 본인이 사서 쓸 것 같은 생필품은 그리 좋은 선물이 아닌 것이다.
만약 그런 게 차라리 낫다 생각이 든다면 그 선물의 의미는 딱 그 가격만큼이다.
어차피 내 지갑에서 나갈 돈을 아껴주는 역할,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번에 새롭게 느낀 건
그걸 고르려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주는 사람의 사려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것.
그 고민의 의미를 들었을 때 공감이 가고 그 관계가 더 소중하다 여겨지는 것.
그래서 그걸 두고 보며 볼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것.
그런 선물이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거슬러 가슴에 남기 때문이다.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천금 같은 기회가 된다.
가벼운 선물이라도 진심을 담고 싶다. 의미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