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길들이지 않는다

길고양이와 거리 두기

by 프로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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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조금 이른 시간인 6시 40분 무렵에 눈을 뜨고 현관으로 나오니 바로 길고양이 쫄보가 집고양이처럼 와서 밥 달라고 보챈다. 곧이어 쫄보와 닮은 까망이도 나타났다. 어제저녁에 밥을 주지 않고 그냥 잤더니 밤새 시장했던 모양이다. 쫄보는 처음 봤을 때부터 경계심이 심하고 겁도 많아서 집사람이 ‘쫄보’라고 이름 지어주었고, 까망이는 쫄보와 닮았지만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더 선명해서 좀 귀엽게 까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전에 오던 녀석은 빛깔이 노래서 노랑이라고 이름 짓고, 아주 가끔 나타나는 포스가 느껴지는 수고양이인 녀석은 얼굴의 반은 희고 반은 검은색인데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선이 사선으로 되어 있어서 약간 무섭기도 하고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데 이놈은 반반이다.

나와 집사람은 먹이를 찾아서 나타나는 고양이들에 대하여 명확한 한계를 두었다. 우리는 이들의 주인이 아니고 가끔 먹을 것을 챙겨주는 마음씨가 나쁘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이들을 길들여서 집안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지금까지 집 주변에서 생존해 온 그들의 자연스러운 세계를 침범하지 말기로 했다. 그래도 먹이를 주고 간식을 주다가 보면 이들의 기존 생활을 흩트리는 일이 되겠지만 만만치 않은 자연세계에서 가끔은 먹이와 간식이라는 횡재를 하는 날도 있을 수 있으니 오다가다 힘들면 들러서 먹이를 먹을 수 있게 가끔 먹이를 주는 정도로 일정한 거리를 두기로 한 것이다. 딸들은 날씨도 추워지는데 고양이들을 집안으로 들이거나 따뜻한 거처를 마련해 주고 규칙적으로 먹이를 먹을 수 있게 식량 공급기계를 두자고 했으나 집사람과 나의 반대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집사람은 이 부분에서는 더 단호하다. 추워도 배가 고파도 스스로 견뎌내야 하고 추우면 현관 앞의 길고양이 집에 와서 잘 수도 있고 배 고프면 사냥을 하거나 다른 생존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길고양이에게는 한계가 명확하고 단호한데 딸들에게는 그러지 못하다는 게 좀 그렇기는 하다.)


II. 쫄보와 까망이 먹이를 챙겨주고 나니 시장하다. 냉장고를 뒤져서 감자와 얼갈이배추로 감잣국을 끓였다. 국물은 항상 하던 대로 다시마와 죽방멸치로 육수를 우리고 감자를 깎아 채를 썰어서 넣고 추가로 얼갈이배추 몇 잎을 넣어서 팔팔 끓여주면 된다. 감자만 넣고 국을 끓여도 감잣국이 되지만 배추 잎이 들어가면 더 시원하고 푸른 잎이 국물의 비주얼을 더 좋게 한다. 물론 간은 멸치 액젓 반 스푼이면 아주 적당하다. 오랜만에 끓인 감잣국이 시원하고 옆집에서 보낸 강화순무 김치가 알맞게 익어서 정말 맛있다. 아침에 이런 따뜻한 국과 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살아 있어 행복하고 따뜻한 국과 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쫄보도 밥을 다 먹었는지 문밖에서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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