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미안하다

by 프로스윤

장마철이라 날씨가 흐리거나 비를 흩뿌린다. 이러다가 세차게 비가 내리기도 한다. 정원에 나가서 풀이라도 뽑으려면 뙤약볕보다는 비 내리는 날이 오히려 낫다.

비가 흔하니 잡초가 자라는 속도가 무섭다. 일주일만 지나도 그냥 풀밭이 된다. 오가며 계속 눈에 보이는 대로 뽑기도 하지만 나의 속도는 잡초가 번져나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거의 보름 만에 다시 강화로 온 집사람은 집을 엉망으로 팽개쳐두었다고 푸념이다. 나도 3일가량 서울에서 있다가 이번에 같이 내려왔는데 올라가기 전에 눈에 보이는 잡초는 대충 제거했지만 맥문동 심은 곳은 다시 바랭이 풀이 번지기 시작했고 잔디밭에도 군데군데 큰 풀이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집사람은 내가 잡초를 뽑은 지 꽤 오래된 것으로 생각한다. 집안에도 창문들을 모두 열어두니까 방충망이 있지만 그 틈으로 작은 날파리들이 들어와서 창문 앞에 죽은 시체가 즐비하다. 내가 내부 청소도 거의 안 하고 지낸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 가기 2-3일 전에 청소기로 청소하고 갔는데도 말이다.


장마에는 잡초만 잘 자라는 것이 아니고 작물들도 잘 자란다. 서울 갈 때 먹을 만한 오이,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등은 전부 따서 가지고 갔는데 어제 보니 오이 3개는 벌써 30센티미터 이상 자라서 꼭지 부분은 누렇게 물들기 시작했고 가지도 거의 40센티미터 이상 자라서 4개나 땄다. 방울토마토도 먹을 만큼 익어서 오이 반 개와 방울토마토 여섯 개에 만들어 둔 요구르트를 섞어서 야채샐러드를 만들고 가지 두 개에 감자와 양파를 넣고 볶아서 감자 가지볶음을 만들어서 저녁을 먹었다. 직접 재배해서 먹는 음식은 시장에서 사서 요리해 먹는 맛과 또 다른 느낌이다. 오이는 훨씬 아삭아삭하고 싱그러운 느낌이며, 가지도 입안에서 씹히는 맛이 하우스에서 자란 물컹거리는 질감이 아니라 입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질감이다. 집사람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에 대하여는 감동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내가 요리하거나 내가 직접 재배해서 먹는 음식은 훨씬 맛있다. 집사람이 만든 요리에 살 큼 매운맛이 나면 맵다고 난리를 피우면서 내가 청양고추를 넣고 끓인 감잣국은 칼칼하다고 표현하여 나의 맛은 선택적이고 이중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한 요리는 더 맛있고 내가 재배한 채소는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길고양이 쫄보는 이제 거의 개냥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집안으로 들이는 것은 아닌데 이 녀석은 얼마 전부터 제 몸에 손대는 것도 좋아하고 빗질을 해주면 너무 좋아한다. 오히려 제가 먼저 다가와서 다리에 부비기도 하지만 나는 야생 풀밭을 다니는 놈이라 아무래도 꺼림칙하여 나의 맨살에 닿는 것은 극히 삼가고 있는데 자꾸 머리나 목을 쓰다듬어 달라고 들이민다. 털을 긁어 주는 빗을 사 둔지는 오래되었는데 최근에야 빗질이 가능해졌고 이 번에는 집사람이 장갑 앞에 긴 돌기가 달리 빗질 장갑까지 사가지고 와서 이 녀석을 쓰담쓰담해 주고 있다.

쫄보의 새끼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지 3주가 지나서 이제는 새끼를 찾는 울음은 거의 없어졌는데 그래도 가끔은 슬픈 울음을 울기도 한다. 집사람이 여기 있다가 서울로 가버린 것이 그 슬픈 울음을 듣는 것을 너무 힘들어해서 바로 집사람과 서울로 갔었다. 얼마 전부터 다른 수컷들과 놀기도 하고 젓도 완전히 말라붙었고 새끼를 찾는 울음은 거의 없어진 것 같아 어제 집사람이 다시 강화로 왔다.

아직도 집사람은 쫄보의 새끼들이 없어진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억울하다. 그냥 차를 운행해서 나갔다가 온 것뿐인데 그 녀석들이 차량 밑에 달라붙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집사람 추측일 뿐이다. 다른 유튜브에서도 차 밑에 숨어 있는 고양이 영상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차량에 접근했을 때 그 새끼들이 놀라서 차 밑에 숨었다가 차량 바닥 구석으로 숨어들었는데 내가 그냥 운행해 가니 이 녀석들은 내가 정차하거나 주차한 곳 어딘가에서 내려서 어미를 찾아서 헤매다가 죽었을 것이다는 것이 집사람의 추리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여도 어쩌란 말인가. 나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면서 차량 밑을 살펴보고 조심조심 운행했고 설마 차량 밑바닥에 숨을 곳이 있다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아직도 차량 밑바닥에 숨을 공간이 있는지는 확인도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차량을 운행하고 나간 이후부터 새끼들이 보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 집사람의 추리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만일 그랬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쫄보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설명하면서 용서를 구해야 할까.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일 것이다.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기도할 뿐이다. 어딘가에서 야생으로 잘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기도한다.

쫄보야, 미안하다. 너의 어린 새끼들이 어딘가에서 잘 자라고 있어 달라고 기도하자.

keyword
이전 12화고양이는 길들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