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거리두기

by 프로스윤

I.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날이다. 어제도 아무 일정이 없었고 오늘도 아무런 일정이 없다. 딱히 정해진 일이 없으니 너무 편안하다. 정원의 잔디를 깎아 줄 때가 됐는데 딱히 오늘 깎아야 할 필요도 없다. 길고양이 쫄보에게 줄 삼겹살을 해동시켜 놓고 식물들에게 물만 한 차례 주면 된다. 토마토나 오이와 같은 채소들에게는 너무 많은 물을 주면 성장만 하지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충고도 있어 이틀에 한 번 정도만 준다.

오늘은 그냥 책이나 보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밥 달라고 하는 쫄보에게 밥 주는 일만 하자. 그런데 요즘은 책도 보기 싫어진다. 눈도 침침하고 진도도 잘 나가지 않아서 읽다가 그만두기 일쑤다. 꼭 읽어야 할 필요가 없으니 재미가 없으면 그만두게 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나 골라서 읽는 것이 좋겠다.


정원 왼편의 소나무 잎 상태가 별로 좋지가 않다. 오른쪽 반송은 잎의 색깔도 균일한데 왼편 반송은 노란 빛깔이 도는 것이 왠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가 정말 난감하다.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누구에게 마땅히 물어볼 데도 없다. 할 수 있는 것 이라고는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검색하는 것인데 딱히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찍어 가서 반송을 판매한 조경업자에게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다. 나무 병원 같은 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있다고 해도 강화에는 없을 것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오늘 할 일이 생겼다. 소나무 상태를 확인하고 조경업자에게 가서 물어보기.


II. 쫄보 녀석은 요즘은 아주 조금의 터치를 허용한다. 어제는 내게 다가와서 스스로 터치를 하더니 오늘은 내가 꼬리를 살짝 만지거나 등을 조금 쓰다듬어도 그렇게 놀라거나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쓰다듬거나 만지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이 있고 피하기는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쫄보는 아마 ‘이 인간은 나를 괴롭히거나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은데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완전히 내 몸을 맡기기에는 좀 더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기의 양을 봐 가면서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인지 봐야겠다’는 정도로 나를 보는 것 같다. 내 생각이지만, 이 녀석은 완전히 우리 집을 제 집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잠시 뒤편의 어린 새끼들에게 다녀오는 것 이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우리 집이나 집 근처에서 보낸다. 아직 새끼를 맡길 만큼 신뢰가 없으니 새끼를 데려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오고 수시로 자기가 왔다는 것을 소리와 몸짓으로 알리며 내가 항상 제 옆에 있을 것을 요구한다. 데크 앞 의자에 내가 앉아있으면 그 옆 그늘에 배를 깔고 졸거나 잔다. 또 내가 보이지 않으면 현관 안 그늘까지 들어와서 거실 안을 기웃거리고 계속하여 밖으로 나오라고 나를 부른다. 물론 나를 부르는 이유는 고양이 사료 이외에 맛있는 간식이나 고기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고기를 줄 수가 없어서 하루에 3번 정도만 2-3조각의 손톱만 한 크기의 고기를 준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사냥을 해서 먹거나 아니면 사료를 먹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잘 못하다가 현관까지 날아든 새를 잡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다. 산까치 같은 녀석인데 아마 열린 현관으로 잘못 들어왔다가 밖에서 들어오는 나와 마주치자 엄청 당황해하는 사이에 쫄보가 내 뒤에 있다가 잽싸게 이 산까치 어린놈을 낚아채서 물고 도망을 갔다. 날쌘 정도가 야생 고양이가 맞다. 얼마든지 사냥을 할 수 있는 녀석인데 인간이 주는 고기 맛에 길들여지면 안 된다.

‘너는 너의 묘생을 살아라, 내가 편하면 언제든지 오고 싫으면 떠나라, 내가 너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지만 완전히 거두어 줄 생각도 없다. 너와 나의 인연의 정도는 만나면 반갑고 안 보이면 궁금하고 보고 싶기는 하지만 누구를 예속시키는 그런 관계로 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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