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역사와 역사박물관
어제는 강화역사박물관을 다녀왔다.
선원면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하점면에 강화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고인돌 유적지가 함께 있다. 내가 가장 관심 가는 곳이 역사박물관이어서 역사박물관 위주로 둘러보고 고인돌 유적지는 가지 않았다. 고인돌과 청동기시대에 대한 내 공부가 아직 미진하고 너무 먼 시대 이야기여서 문자로 기록된 역사적인 것을 먼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연사박물관은 거야말로 찍고 나왔다. 생물과 진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곳의 입장료가 3천 원인데 강화군민인 나는 공짜로 입장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11자로 전입신고를 한 덕을 이제야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와 강화의 역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냥 훑어보는 정도였고 관람 당시에는 특별하게 새로운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가 잘 알지 못한 부분들에 대하여 역사박물관 관람을 통해 그래도 명확하게 알게 된 것도 몇 가지가 있다.
주자학은 안향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고 그를 기리는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이 세워진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박물관에서는 ‘안향이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강화 교동도에 있는 교동향교에 최초로 모셨다’고 설명자료를 게시하고 있었다. 공자상을 최초로 모신 향교가 교동향교라는 것인지 최초의 향교가 교동향교라는 것인지 불명확하였으나 확인해 보니 최초의 향교가 교동향교가 맞다. 놀랍다. 내가 사는 강화도에 주자학 교육기관이 최초로 세워진 곳이라니. 교동도에는 여러 번 가봤지만 향교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날 잡아서 교동향교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다음으로, 불교의 우리나라 전래와 관련하여, 내가 알기로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前秦)에서 순도, 진(晋)에서 아도 등이 고구려에 전파하고 백제에는 침류왕 때 동진의 마라난타가 전파하고, 신라에는 고구려에서 묵호자, 아도가 전파하고, 일본에는 백제의 노리사치계가 전파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모두 시험 보느라 달달 외웠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대학입학시험은 물론 사법시험 1차에서도 국사과목이 있었다. 사법시험 1차 시험은 무려 4번이나 봤다. 역사박물관에는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그 아도화상이 ‘강화도의 진종사를 건립하였고 그 진종사가 현재의 전등사의 전신’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초기 불교의 전래도 강화도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 놀랍다. 주자학과 불교가 모두 강화에서 크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라니 나와 아무래도 깊은 인연이 있는 느낌이다.
주자학과 불교는 너무 어려워서 진즉에 포기한 부분인데 다시 공부라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고려는 몽고 침입시기에 강화도로 천도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도 인조가 강화로 피신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는데 왜 강화로 오려고 하였을까 항상 궁금했었다. 역사박물관의 고려의 강화 천도 배경에 관한 해설은 이렇다. 1) 몽골군이 수전에 약하다 2) 개경과 거리가 가깝다. 3)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갯벌 때문에 방어가 유리하다 4) 개경으로 가는 조운로에 위치하여 전국의 조운을 받을 수 있다. 수도와의 거리, 방어, 조세, 이 3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신속하게 피할 수 있고 물살이 센 염하 바다가 있어 쉽게 방어할 수 있고 더구나 경제적 여건마저 받쳐주니 가히 최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강화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1) 완전 시골임에도 서울과 가까워 1시간이면 서울집을 오갈 수 있다 2) 바다를 끼고 있어 밴댕이, 꽃게, 주꾸미, 갯벌장어 등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하다 3) 경제적 여건은 좋다고 볼 수 없지만 나처럼 도시에서 이동한 인구가 제법 많아 별 간섭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최적이다, 정도이다. 집사람은 딱히 내가 강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아마 전생에 강화로 유배온 사람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강화로 유배온 사람이 꽤 많다. 고려, 조선의 왕과 왕족들이 유배를 오면 거의 강화로 왔다. 내가 전생에 왕족이었나, 아님 그 식솔이나 노비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