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구멍

by 프로스윤

새벽에 깨어서 뒤척이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현관문을 여니 길고양이 반반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잔뜩 흐리고 금방 눈이 내릴듯하다. 춥기도 해서 현관까지 만이라도 들어오면 좀 따뜻하지 않을까 싶어 현관문을 조금 열어 두었으나 이 녀석은 여전히 경계가 심해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까망이는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보채며 거실까지 냅다 들어오는데 얘는 현관까지 들어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집사람이 사둔 간식을 짜서 밥그릇에 담아서 현관 안쪽에 두니 그 먹이의 유혹에는 참지 못하고 고개만 들이밀고는 간식을 먹는다. 나나 집사람의 생각은 길고양이들에게는 우리는 결코 집사가 아니라 친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너무 길들여지면 서로 피곤하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깥 기온이 너무 차서 현관 정도까지는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재활용 박스를 재단하여 10센티미터 정도 열어둔 현관문 안쪽에 붙이고 그 하단 오른쪽 귀퉁이에 가로세로 10센티미터의 구멍을 내었다. 쥐구멍이 아니라 고양이 구멍이다. 까망이 녀석은 바로 이 구멍으로 들어와서 중문까지 들어왔다. 까망이가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중문도 10센티미터 열고 그 위에 박스를 덧대어 놓았더니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어제 까망이는 이렇게 거실까지 들어와서 놀다가 갔다. 그러나 반반이 녀석은 현관까지 들어오는 것도 힘드므로 아예 중문은 닫고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더니 살금살금 현관 고양이 구멍으로 들어와서 현관에 놓아둔 고기 몇 점을 먹고 거기에 둔 박스 속에 들어가 쉬고 있다.

밖이 추우니 조금 쉬었다가 가거라. 여기서 살 생각은 말고.

반반이 고양이 구멍.png


이런 상황들을 틈틈이 촬영하여 딸들에게 보냈더니 길고양이 추위 대책을 좀 더 철저하게 하고 아예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고 성화가 심하다. 그러나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온 우주의 생명체가 다 소중하지만 그 인연대로 사는 것인데 너무 인연을 맺어두면 나중에 힘들어지는 법이다. 이대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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