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케빈데브라위너의 축구는 예술이다

by 프로스윤

오늘 새벽 뉴캐슬유나이티드와 멘체스터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축구 하이라이트를 봤는데 교체 투입된 데브라위너의 움직임은 가히 예술이다. 오랜 부상 끝에 오랜만에 투입되었음에도 빈 곳에 예리하게 찔러 넣는 번뜩이는 안목과 킥, 정확한 패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가 제법 오랫동안 유럽리그 축구경기를 보아왔는데 데브라위너의 모습에 매료되어 맨시티의 경기는 대부분 챙겨본다. 물론 하이라이트로 보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데브라위너는 후반에 투입되어서 수비의 가랑이 사이로 먼 거리임에도 정확하게 골문 왼쪽 구석으로 차 넣는 기술을 보였는데 거의 신의 경지이다. 그 수비의 다리 사이로 골문 구석을 어떻게 봤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 각도에서는 그 길밖에 없다. 참 대단하다. 종료휘슬 2분 전 추가시간에 하프라인 부근에서 수비가 가득한 뉴캐슬진영 골문 앞으로 신인 맨시티 선수 1명에게 정확하게 롱패스를 해서 연결시키는 킥력은 정말 대단하다. 물론 이 롱킥을 정확하게 받아서 골로 연결시킨 이 선수도 대단하다.


나는 왜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릴 적 골목에서 고무공으로 맨날 친구들과 공차기를 했다. 그 고무공이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바람이 빠지는 날에는 너무 상심이 크고, 자전거 튜브 수리도구로 펑크 난 부분을 수리해서 차기도 했지만 그 고무공은 곧 얼마 안 가서 바람이 빠진다. 그때의 소원은 가시에 찔리지 않는 가죽 공을 가지는 것이었다. 가죽 공은 진주 시내나 고성읍으로 가야 살 수 있고 돈 많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이 닳은 가죽 공을 형들에게서 얻어 차 보기는 했지만 축구화가 아닌 허름한 운동화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차는 가죽 공은 고무공으로 하는 축구보다 재미가 덜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축구를 아주 잘한 것은 아니다. 옆집의 한 살 많은 연석이 형은 정말 드리블을 잘했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공이 오는 자리를 잘 맡아서 걷어내고 연결해 주는 역할은 그런대로 잘했다. 평소에는 다른 놀이에서는 나를 잘 끼워주지 않고 공부만 잘하던 아이로 취급되던 나였지만 다른 동네와의 축구 시합에서는 나를 꼭 찾았다. 내가 없으면 인원이 부족해서 이기도 했고 나만큼 수비를 잘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수비는 전혀 눈에 띄지도 않았고 나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 줄 전혀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드리블 잘하고 골을 잘 넣는 선수만 기억되는 것이 그때의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진짜 선수들로 구성된 축구팀이 있는 진주고로 진학한 후에는 아예 공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가끔 점심시간에 축구 경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소극적인 내가 그들 경기에 참여할 정도의 축구 실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 군대에서 나의 축구 실력을 조금은 인정받았다. 족구와 축구를 잘하면 군대생활은 최고인 시절에 군에 입대하였다. 소대대항 족구 경기에서 가끔 투입되었지만 공격력이 그렇게 날카롭거나 강하지 못했다. 그래도 태권도 실력은 조금 있어서 앞줄에서 오른발로 찍어 차는 공격을 하기도 했으나 위력이 강하지 못해서 병장 선임이 되기까지는 뒤쪽에서 수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력이 이렇다 보니 축구시합에서는 나를 투입시키려는 선임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 화기소대와 우리 3소대와의 축구시합에서 인원이 부족해서 내가 수비로 투입되었는데 우리 중대의 호날두 같은 박** 상병을 내가 전담으로 맡아 그의 공격, 돌파를 전부 커트해 내자 박상병은 기어이 화를 참지 못하고 경기 중임에도 나에게 손찌검까지 하기도 했다. 군대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계속 수비수로 발탁되어 소대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물론 중대대표로 나가지는 못했다.

이런 공차기 실력은 사법연수원에서 족구시합을 하면서 만개하였다. 족구는 공이 오는 위치만 정확하게 파악하여 상대방의 공을 안정적으로 앞쪽으로 밀어주기만 하면 된다. 대학교 고시반 테니스 코트에서 가끔 족구를 하기는 했지만 고시생이라 그렇게 자주 하지는 못했는데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체육대회에서 족구 대표선수로 나가서 우리 반이 우승하는데 일조를 했다. 사법연수원에 갔더니 운동 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나 정도 공을 다루는 실력이면 아주 잘하는 축에 속했다. 매주 한 번 있던 체육 시간에 족구경기를 할 때면 내가 선수로 나가는데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나이도 29세로 반에서 중간 정도되고 공을 받거나 때리는 모습이 나쁘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법연수원 1년 차 체육대회 때 우리 반의 족구 대표선수로 출전해서 우리 반이 우승하였다. B조 조장인 형식(?)이 형은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고, 대형 로펌의 이**변호사, 김** 변호사, 임** 변호사 등이 그 당시 함께 하였던 우리 팀 선수들이었다.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시간의 이야기이다.


이런 여러 가지 축구와의 인연으로 나는 지금도 축구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공을 잘 차는 선수들을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서에도 손흥민, 이강인 선수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데브라위너 같은 예술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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