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한복을 입으며
조금 이른 시간에 잔디밭으로 나서니
하늘 가운데
높이
벌써
기러기떼가 지나간다.
가을이다.
10월이니 가을이 맞다. 서늘해진 날씨에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아침에는 좀 두꺼운 개량한복을 입어본다.
20년 동안 입지 않던 옷인데 재작년에 강화로 오면서 옷장에 있던 것을 챙겨 온 것인데 지금에서야 입는다.
이 개량한복은 20년 전쯤 부산에 살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누님이 공무원 생활을 하는 막냇동생을 위하여 칼국수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나와 집사람에게 한벌씩 해 준 옷이다. 누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형편이 그렇게 녹녹지 않음에도 번듯한 공무원이 되고 결혼도 한 막냇동생을 항상 어린 막내로 여기며 뭐든 조금이라도 챙겨주려고 하였다. 누님과 매형의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한복집에 따라가서 치수를 재고 며칠 후에 한복을 배송받았다. 그러나 받은 후 집안에서 옷이 맞는지 입어 본 후에는 다시 입어보지 않았다. 개량한복은 활동가들이나 입는 옷으로 여겨졌고 더 편한 옷들이 많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많기도 해서 딱히 개량한복을 입어야 할 필요나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강화에서는 개량한복이 딱이다. 안감과 겉감이 따로 있어 가을에 딱 맞는 두께이고 헐렁해서 입고 벗기에도 편하다. 몸무게가 많이 줄어서 가지고 온 옷들이 전부 헐렁해져서 다른 옷들은 입으면 후줄근해 보이는데 개량한복을 입으니 원래 헐렁한 것이어서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 중늙은이가 입으니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활동가로 오해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그냥 시골 노인네로 여길만하다.
길고양이 팡팡이도 서늘해진 날씨 탓에 고양이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 여름날에 내가 정성 들여 나무를 재단해서 적당한 크기로 집을 만들어주었음에도 한 번도 들어가지 않더니 이제야 들어간다. 역시 다 때가 되면 소용이 있는 법이다.
내가 개량한복을 꺼내 입고, 팡팡이가 새로 만든 나무집에 들어가듯 언젠가 쓰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