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의 용기

용기 :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by 고전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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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손뼉 치는 걸 좋아한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외침을 곁들일 수 없지만, 누구보다 크게 칠 수 있다.

본만을 만한 인간의 행동은 어떤 여신보다 아름답다. 따라서 응당 기리고 드러나야 한다.

손바닥을 마주치는 행위는 내가 진정으로 감응했으며, 닮고 싶다는 소망과

나 또한 언젠가 그렇게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용기’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순간에서나 필요하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가장 앞장서서 발걸음을 떼는 군인,

무자비한 폭력의 공권력과 대치한 현장에서도 일관된 정의(正義)를 주장하는 시민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건널목에 남겨진 할머니를 안내하는 학생들,

은퇴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배움터에 들어선 만학도,

평소 성향이 맞지 않아 늘 얼굴 붉혔던 상대의 바른 의견에 수긍하는 권력자,

저지른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지라도 ‘용기’의 부재는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용기’의 존재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내겐 용기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을 때마다 꺼내는 책이 있다.


“선생님.”

랑베르는 말을 꺼냈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에서)


이방인으로 잘 알려진 알베르 카뮈,

그의 또 다른 역작 「페스트」는 인간과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를 나타내기 위해 지어졌다.

그러나 난 거기에서 인간의 희망을 확인한다.

1940년대 북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발생한다.

준비되지 않은 도시는 봉쇄당하고 고립된다.

하루가 다르게 더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이 재앙에 모두 절망하고 불안에 빠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로써 이 사태에 맞선다. 그리고 결국은 살아남는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리유와 그를 조건 없이 돕는 동료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써

인간과 삶,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우리 세대는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따른 팬데믹을 겪었다.

실로 우리의 예상과 능력을 벗어난 거대한 위협에 속수무책 당했고,

강제로 인간을 잠식하는 바이러스에 우리 몸이 어서 순응하기만을 바랐다.


한편으로는 이 바이러스가 인류를 끝장내지는 못할 거라 알고 있었다.

누군가 적당히 희생되면, 지나가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만 아니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인간은 그리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았다.

누군가는 치료제를 만들고, 누군가는 약자를 돌보고, 누군가는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애썼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은 용기의 발로이다.

감히 그 용기의 크고 작음을 따질 수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내게 와닿는 건 연약한 자신을 이겨낸 용기다.


그렇다, 인간이 소위 영웅이라는 것의 전례와 본보기를 세워 놓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반드시 이 이야기 속에 한 사람의 영웅이 있어야 한다면,

서술자는 바로 이 보잘것없고 존재도 없는 영웅,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는 없는

이 영웅을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에서)


가난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으며, 사랑하는 부인에게 버림받고, 허세 가득하고,

자신의 역량을 재지 못하는 몽상가요, 심약하고, 그 누구에게도 특별히 기대받지 못하는 심지 없는 인물.

작자는 그 인물의 작은 행동을 딱 꼬집어 영웅으로 내세운다.


심지어 그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사태 수습에 어떤 이점을 일으켰는지도 정확히 묘사하지 않는다.

너무 가벼워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고 벌벌 떠는 그는 그럼에도 위대하다. 왜일까?


용맹을 타고난 사람은 성향에 맞게 과감히 행동해야 직성이 풀린다.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게 습관인 사람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반응한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솔선수범하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본래 타고난 것을 제대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지치는 순간이 온다.

바로 그때 그런 피로를 감격으로 날려버리는 강장제가 있다.


아무리 과해도 부작용이라곤 일절 발생하지 않는

바로 그 약한 이들의 자신을 이겨낸 ‘용기’다.

그들은 깨어있던 사람을 지치지 않게 하고, 잠들어 있던 이들을 일어나게 한다.


난 ‘용기’를 타고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잘 안다.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음을.

구체적인 상상이 머릿속에서 휙휙 지나가고

가슴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 치고, 손발이 사시나무같이 떨고,

이성적인 사고는 멈춰버린다. 십중팔구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눈 질끈 감고 버티고 있다?

그 가련한 이를 보면 내빼던 이도 마음을 고쳐먹을 것이다.

겁쟁이의 용기는 너무나 값진 것이다.


우리 모두 이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나이는 됐다.

다만 용기를 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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