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로움을 즐기자

권태 :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by 고전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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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계절이다.

나는 북쪽으로 가벼운 여행을 떠났다.

날 맞이한 바람은 매섭다 못해 무거웠고, 낮은 기온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눈에 담기는 설국의 풍경은 웬만한 고난들을 감수하기 충분했다.


거기다 난 유년에도 타보지 못한 눈썰매까지 탔기에 더욱 즐거웠다.

한 10초쯤 됐을까?

정상에서 중간쯤 둔덕을 넘으면 나르는 듯 쭉 미끄러지는 청량감,

그것은 도시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활강은 여러 번 반복됐다.

차가운 바깥공기에 정신은 서서히 무뎌지고, 감각은 차가운 것 외에는 의식하지 않았다.

내가 숨 쉬고, 체온을 유지하고, 혈류를 조절하는 것,

말 그대로 생물로서 생존하는 것 외 모든 스위치가 잠시 꺼지거나, 기능이 최저로 조정됐다.


신나는 활동이 끝나고 뜨뜻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육체와 정신은 흐물흐물 녹아간다.


그렇게 난 시들어진 채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난 마비에 가깝게 지냈다.

움직임이 적으니, 입으로 뭔가 굳이 넣을 필요도 없었다.

빵 한 덩이 입에 넣었으나,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이런 상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이건 단순히 수동적인 무기력증이 아닌,

능동적인 권태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래, 난 모든 걸 떨쳐버릴 필요가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에서)


소설 ‘설국’은 인간의 여러 정서를 듬뿍 담고 있다.

‘눈으로 읽는다’라는 표현보다 ‘마음에 담는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감각적인 문장들은

이 책에 여러 번 빠져들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도쿄 남자 ‘시마무라’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지식인이지만 실상은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될 한량일 뿐이다. 따라서 늘 내면의 갈등과 공허함, 과한 의미 부여에 삶을 보낸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작은 온천마을은 시마무라에게는 안식처이지만, 상대인 기생 ‘타마코’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감정은 좁혀지다가도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무언가에 가로막힌다. 그 둘의 감정을 중심으로 설국의 자연 풍경과 다른 인물들의 등장이 시적인 언어로 섬세히 쓰였다.


난 이 책에서 사랑에 관한 특별함을 기억하지 못한다.

주인공의 삶에 대한 허무와 따분함만 떠오른다.

그건 말 그대로 의도된 따분함이다.


꿈은 아니지만 꿈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감각들로 채워간다.

현실로 돌아올 때는 절대 가져올 수 없고,

단지 그곳에서만 아름답게 만끽할 수 있는 것들.


눈 신호소에서 역장을 부른 그 목소리다.

들리지도 않는 먼 배에 탄 사람을 부르는 양,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화물열차가 지나가 버리자, 눈가리개를 벗은 듯이 선로 저편의 메밀꽃이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줄기 끝에 가지런히 꽃을 피워 참으로 고요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에서)


소설 속 타마코에게는 잔인한 얘기일 테지만, 그곳은 주인공이 그려온 이상적인 공간일 뿐이며,

등장인물 또한 풍경의 일부인 것이다.

현실을 잠시 도피하기 위한, 현실에 멋지게 복귀하기 위한, 이상에 빠져 혼미해지는 걸 경계해야 할,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탈출해야 하는 공간.


몽환적인 공간은 내게

눈발의 세례를 직접 받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만 허락했다.

그렇기에 난 그 부족함을 일상의 권태로움으로 대신한다.


그것을 난 최대한 천천히 흘려보내려 한다.

내 구석구석 들어차 있는 불필요한 것들도 함께 가져가길 바라면서,

권태로움을 만끽하자, 새로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지난 것들을 벗어던져버리자.

저 좁디좁은 신세계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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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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