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험이 시작된 이유를 들려줄게
중년의 삶이 무너졌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정확히 몰랐을 뿐.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내 마음속 문제가 심각하단 사실을.
짐작 가는 원인은 많았다.
감당할 현실의 괴로움이 구체화될수록,
수십 년 인생 속 선택 하나하나가 전부 오류 같았다.
상위권은 아니더라도 아슬아슬 인간으로서 과락은 면한 삶이라고 믿었는데, 확신이 사라졌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낮에 찍은 OMR카드에 한 칸씩 밀려 찍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외면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손대야 할지 엄두가 안 나서였다.
억지 합리화와 자기기만이 이어졌다.
방황 없는 인생이 어딨어? 별거 아닌 걸 확대해석 하지 마.
어른이 이 정도도 못 이겨내?
징징댈 시간 있으면 극복할 궁리나 해.
매일 나아지고 있어, 과정일 뿐이라고,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달라져,
넌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놈이야.
저 사람 봐, 훨씬 큰일도 다 감당하잖아.
이것도 못해? 그래놓고 떳떳할 수 있다고? 잠이 와? 밥이 입에 들어가? 부끄러운 줄 알아.
너도 할 수 있어. 아니라면 앞으로라도 그렇게 되어야지.
노력해야지, 바뀌어야지, 달라져야지, 침착해.
마음 다스려, 책 읽어, 운동으로 자신감을 되찾아.
아냐 그럴 시간 없어. 이것부터 해치우자. 나약한 소리 말고.
그리고 다시 도돌이표,
천천히 흐르던 생각의 주기가 짧아졌다.
일주일, 하루, 매시간,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서류에 비문이 늘었다. 단순한 문장에도 마침표를 찍는데 한참 걸렸다.
사무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계속 늘었다. 생각은 짧아지고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아무 쓰잘머리 없는 말들.
내 머릿속에 풍화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단단한 겉이 허물어지니 물렁한 것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끔찍했다.
그런데도 나는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버텨야 했다.
천으로 대충 둘렀다. 거짓 웃음, 거짓 분노, 거짓 진심으로 칠해진 얇은 천.
그렇게 버텨야 했다. 나 자신에게 채찍을 휘둘러야 했다.
눈 감으면 거대한 폭풍에 사정없이 휘둘리는 배 한 척이 떠올랐다.
뜬 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일주일에 사흘이었다.
자신의 배수량을 가늠하지 못하고 너무 큰 대양으로 나와 버렸다고 매일 아침 생각했다.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앞으로 앞으로’란 강박에 난 너덜너덜해졌다.
대단치도 않은 이력과 책임감이 스스로를 더욱 뻣뻣하게 만들었다.
북적대는 사람 속에서도 외롭단 감정만 뚜렷해지는데, 업무는 나날이 늘어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님을 인정해야 했고, 진실된 도움을 진작 요청했어야 했다.
위기의 심각성이 가족에게 번지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이 막고 나섰다.
하나뿐인 친구에게 마음을 털어놨다. 비전문가인 그도 단언했다.
심각한 상태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알겠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같잖은 고난을 꺾을 아집뿐이었다.
난 그렇게 약하지 않아. 이겨내고도 남을 인간이지.
엉터리 최면요법으로 어찌저찌 버텼다.
그러는 동안 머리칼이 하얗게 셌다.
염색은 절대 안 한다고,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인 거라고, 조만간 되살아 날 거라고 고집부렸다.
머리카락 쓸어 올리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손에 그대로 전해지는 영양분이라곤 전혀 없는 푸석푸석함을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려웠다.
생애 첫 염색을 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기분 좋았다. 회복됐다.
다시 시작할 활력이 솟구쳤다.
임시방편은 직면한 사태를 중단하고 물러날 시간을 벌어주는 용도지,
다시 쌩쌩 달려도 된다는 게 아녔다.
이 결정적 오판이 완전한 붕괴를 완성했다.
회사에서의 나, 가장으로서의 나를 바로 세우려 발악했다. 부작용은 머지않아 드러났다.
가정은 가정대로 더 소홀해지고, 회사에서는 고립되어 가고 갈팡질팡했다.
중요한 약속들을 계속 놓치고, 상황에 맞게 사람을 대하지 못한 탓에 평판은 나빠졌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려는데 집 현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겨울 초입이었는데,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얼마 뒤 쫓겨나듯 직장을 관뒀다. 집에 돌아와 덤덤히 얘기했다.
가족 반응은 의외였다.
‘그럴 줄 알았어. 이참에 좀 쉬어. 잘 나왔네.’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았을 뿐,
수다스러운 난 회사에서 겪은 일을 밤마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했었다.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속으론 날 욕하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
나중에는 틀렸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냥 내 마음속 병이 만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가족은 정말 내 편이다.
한 달 반, 난 크게 방황했다.
예전에는 그나마 사회인이라는 신분으로 방황했다면, 지금은 그냥 원초적 인간으로 죽지 못해 살았다.
매사를 가볍게 여기는 천성이었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난 정반대의 인간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저 멀리 동이 트긴커녕, 더 어두워졌다.
당장 생활비에 대한 막막함, 무책임한 가장에 대한 혐오감, 낙오한 사회인으로서의 열패감,
오만했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 자신을 좀먹는 감정들은 갈수록 커졌다.
휴대폰이 하루에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꽤 오랫동안 사회생활만을 위해 살았다.
능력은 요만큼인데, 욕심은 저만큼이나 되니 그 외에 것들은 아예 내팽개쳤던 것이다.
나란 인간의 삶은 과욕,
그것을 보조하는 무식한 끈기와 무지한 인내가 전부였다.
억지로라도 다시 사회에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난 조급했다.
다들 이래, 네가 특별한 존재도 아니잖아. 모두 아픔이나 두려움을 지니면서도 나아가는 거야.
이 정도도 못하면 넌 어른도 아냐. 떳떳하게 살아야지.
어느새, 날 해할 채찍이 손에 들려 있었다.
‘뭘까, 뭐지? 이건 아니야. 제대로 된 치유 없이 바보 같은 짓만 반복하게?’
내 진심은 그렇게 외쳤다.
‘그렇지만, 너무 이기적이잖아.
거기다 부풀기만 하는 이 부정적인 감정들에 온종일 맞서기 힘들어.
이들은 나날이 커지는데, 난 나날이 쪼그라들고 있어.’
내 안의 또 다른 진심도 외쳤다.
또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웠다.
이것저것 탓하고, 미워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잡을 수 없는 지난 시간을 붙잡으려 버둥거리고,
난 자신을 부식시켰다.
얼굴 여기저기가 붓고 염증이 차올랐다. 바닥이라고 짐작했던 삶이 끝 모르고 계속 추락했다.
얼마나 떨어지고 있었을까? 좀 지겨웠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던했다.
뭐가 그리 억울하냐고.
이 와중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냐고 스스로 물었다.
난 힘들 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조용히 답했다.
그 순간 내게 다시 던져진 질문은 ‘그럼 어떻게 살기 싫냐?’였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내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상태’였다.
‘타인에게, 환경에, 생활에 뒤틀리고 흔들리는’ 이 안쓰러운 사람으로 계속 살긴 싫었다.
내 마음속 서랍을 열어봤다.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며 잘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는 남아있지 않을까? 아니, 텅 비었다.
이 정도였단 말이지. 작고 좁은 공간이 황량하니 더 초라했다.
마음을 꽉꽉 채우고 싶다.
하찮게 여겼던 사람의 마음과 감정으로 자신을 무겁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채운대로 표현하고 크게 어긋나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난 소망했다.
나는 마음을 찾아 떠나야 할 때였던 것이다.
어떤 감정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어떤 것에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찾으면 된다. 만져보고 맡아보고 내 것인지 가슴에 가져다 대보고, 맞으면 넣겠다.
잃어버렸던 내 마음을 찾는 여행이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