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찾아온 절망에게

절망 :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렸거나 그런 상태.

by 고전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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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린다.

좋은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무래도 나쁜 상황이 좀 더 기억에 남는다.

작년 한 해 직장과 집에서 여러 힘든 일이 겹쳤다.

세월 허투루 보낸 것도 아니고 이번에도 원만히 수습할 거라 자만했다.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인생 만만치 않은 걸 톡톡히 깨달았다.


이번 나쁜 일은 꽤나 집요했다.

어? 이게 버티네? 어디 끝까지 가보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한 번 삐끗하니 대기표 받고 기다리던 다른 나쁜 일이 ‘띵동’ 하며 연달아 나타났다.

별 수 있나. ‘똑’ 하니 부러질 수밖에.


세상 참 야속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엔 한계가 있다.

사람마다 범위가 다를 뿐 누구나 마찬가지다.

맞서 볼만한 시련에게서 인간은 좌절감을 느낀다. 극복할 수 있다면 삶은 더욱 풍부해지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서 인간은 절망감에 빠진다. 상대할수록 삶은 더욱 비참해진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되감고 재생하는 걸 반복하며 망상을 첨가한다.

마음대로 편집하고 불안정한 감정으로 꾸미다 보면 의도한 대로 최악의 결과물이 창출된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무너뜨리고 더욱더 억지로 파고들어 삶은 괴로워진다.


허접한 새드엔딩 한 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사방이 검고 차가운 물로 차오른 걸 알게 된다.

유일한 관객은 숨쉬기조차 어렵다.

바랐던 결과가 이거였다면 슬플 따름이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다. 다만 방법이 잘못된 거지.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 민음사에서)


내면에서 메마르고 건조하게 던져지는 잠언.

그래, 내게 벌어지는 지독한 일에겐 악의가 없다.

날 어찌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 녀석은 그냥 그렇게 타고났고,

내가 정한 삶의 방향에 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절망이니, 그것이 대단한 것이니 아닌 것이니 따윈

오로지 내가 정의하고 내가 만든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감정을 타고난 사람이 상황에 맞는 기분을 갖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에 천착하는 가련한 이를 도울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난 절망으로부터 비롯된 온갖 잡다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는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친구의 자살로 인해 삶과 죽음을 사유하고,

자신을 거쳐 갔거나 자신이 잠시 머물렀던 여성에게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고,

그리고 적지만 독특한 개성의 인간과의 관계로부터 성장에 겪어야 할 감정들을 맛본다.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간결하면서도 정서를 가득 담은 문장,

어느새 소리 내 읽게 만드는 상황 묘사의 흡입력,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의 ‘좋지 않은 것에 대한 무미건조한 태도’에서

비롯된 시기질투 때문이다.


‘나와 와타나베가 닮은 점은 말이야, 자신에 대해 남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 점이 다른 인간들하고 달라. 다른 놈들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애를 태워. 그렇지만 나와 와타나베는 그렇지 않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나, 남은 남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 민음사에서)


주인공의 공감 능력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뿐이다.


그는 어떤 방황 속에서도 아르바이트를 빠지지 않는다.

틈틈이 시험 준비를 한다.

독서를 잊지 않는다.

일상을 놓지 않는다.

상대를 위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정답이라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현명한 대처방법임은 분명하다.

어떠한 나쁜 상황도 결국은 초라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굳이 찾아가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 스스로를 동정하며 절망의 저수지를 향해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만, 멈춰라.’라고 소리 내 말해라.

어둠의 저수지에게 매몰차게 등 돌리고,

멀리 떨어져야 한다.

나만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단 걸 잘 안다. 그러나 해내야 한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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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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