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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by 뜰에바다

조물주의 사랑은 기다림이다. 에덴동산을 죄로 채울 수 없어 당신에게 불순종한 사람을 추방한 이후,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어 듣게 하고, 급기야 친아들마저 세상에 보내 제물 삼은, 모두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예수가 '두 아들의 예화'에서 '기다리는 자와 돌아오는 자의 초상'을 잘 보여준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집을 나갔다. 외국에서 허랑방탕하여 다 탕진했다. 급기야 돈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다. 먹을 것을 위해 돼지를 치게 되었다. 돼지가 먹는 밥을 먹으며 비로소 집이 생각났다. '집에 돌아가 품꾼이 되어도 이보다는 낫다.' 결론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달려 나왔다.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다.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집에 있던 큰아들이 지나치다고 화를 냈다. 아버지가 다독였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므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기다리는 자는 한결같아도 돌아오는 자는 한없이 더디다. 더디다 못해 아예 조물주 자체를 잊는다. 몇천 년을 고아로 살아도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다른 무엇을 만들어 조물주라고 기댄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조물주에게 돌아서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세상의 학식과 연륜이 쌓이면 더 힘들다. 예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땅의 부요와 지성이 사람을 굳게 하고, 고정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다가 70대에 이르러서야 조물주에게 돌아선,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1934~ 2022)가 73세에 세례 받고,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구도의 마음을 시에 담았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열림원, 2010)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 떠다닐

반딧불 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어령 교수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다. 문학평론가요, 시인이요, 교수로서 그는 대한민국 인문학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의 창작성과 천재성이 돋보인 것은 88 올림픽 기획자로서 개회식 때 '평화'와 '여백의 미'라는 의미를 담아 어린이와 굴렁쇠를 등장시킨 일이다. 또 하나는,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에 일본어 '노견'을 '갓길'로 바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자긍심은 하늘을 찔렀다. 조물주와 십자가의 예수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장녀의 투병 및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마음에 틈을 냈다. 따라서 평생 문학과 지성의 길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가 바야흐로 지성을 넘어 영성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당시, 한국교회와 지성인들에게 큰 이슈였다. 언론이 그의 수세 장면을 대서특필할 정도였다. 어떤 이는, '한국의 인문학이 교회 안으로 통째로 걸어 들어왔다.'라고 촌평했다.

그즈음 그가 출간한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자신의 회심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처럼 먹물에 찌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백 퍼센트 신자는 못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 밤에 자다가도 회의와 참회를 되풀이하면서 살지요.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 사이의 황혼이 아름답듯이 크리스천과 비 크리스천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990년 우리 시대 최고의 전문 카피라이터요, 칼럼니스트인 이만재(카피 파워 대표) 선생이 50세가 다 되어 조물주에게 돌아섰다. 선생은 한국에서 카피라이터 세상을 처음 열었다. '동원참치 살코기 캔' '정직한 세상을 바꾸는 CBS' '손이 가요 손이 가요 새우깡에 손이 가요' '인심 좋은 안성댁 안성탕면' 등등 우리 귀에 익숙한 광고 문안으로 세상과 소통한 수재다.

그가 윤형주의 안내로 교회에 발을 디딘 후, 처음 100일 동안의 일기를 《막 쪄낸 찐빵》(도서출판 두란노, 1990)으로 펴냈다. 당시 초보 크리스천의 새로운 시선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제34일 / 1990. 6. 1(금)


희한한 `십자가 반지` 구입 사연. 이 감독과의 술 약속을 위해 퍼시픽 호텔로 가던 중 명동 지하상가 인파 속에서 아뿔싸, 발 삐끗해서 넘어짐. 순간적으로 이건 필시 술꾼 야단치신다는 하나님 생각. 아픈 무릎을 주무르는 내 코앞의 금은방 진열장. 뚜뚜뚜... 내 시선 닿는 곳에서 웬 `십자가 반지`가 빛나다. 그냥 일어서서 지나칠까 생각하다가.... 뜻하는바 분명히 있는 듯하여 큰맘 먹고 문을 밀치고 들어가 선뜻 반지 구입!

내가 이 `십자가 반지`를 끼고 있는 한, 최소한 하루 열두 번씩은 예수님 생각을 아니할 수 없겠지. 미운 놈 욕하고 싶을 때마다 십자가를 생각하고 자제해야지. 손에 쇠못 박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하신 예수님이셨는데, 까짓 미운 놈 하나 용서 못해서야 되겠나..

근데, 내가 졸지에 웬 난데없는 십자가 반지를 끼고 다닌다? 우리 하용조 목사님은 강단에도 십자가를 모시지 않고 목회를 하시는데, 이거 나는 초보자가 너무 냄새 피우는 거 아닐까...?


그렇다. 조물주에게 돌아서면 달라진다. 물론 눈에 보이는 획기적인 무엇은 없다. 겉은 이전과 똑같다. 그러나 속은 지성을 넘어 영성으로 익어간다. 하여 같은 사람이나 새 지평을 갖는다. 같은 본체나 새 사람이다.


하여 조물주는 기다린다. 오늘도 기다린다. 애타게 기다린다. 눈물로 기다린다. 평생의 어느 한순간, 누구든지 조물주에게 돌아서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것은 아시아인이나 서구인이나 아프리카인이나 똑같다. 집 밖에 있거나 집 안에 있거나 동일하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그 한순간을 위하여! 그 한순간, 최대한 그를 환대하기 위하여! 그것만이 유일하게 그를 살리고 영원히 함께 사는 길이므로, 조물주는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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