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편 A는 돌연변이였다. 부모님은 장로, 권사요, 두 형도 신실하게 교회의 중직을 맡아 봉사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삼 형제 중 유독 A만 중학생 때부터 다른 길에 있었다. 신이 안 믿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성경이 동화로 들리는데 어떻게 믿느냐고 항변했다. A가 결혼하고 얼마 지났을 때, 진지한 가족회의가 열렸다. 두 형이 A에게 제안했다.
"A야, 네가 1년만 교회에 출석하면 좋겠다. 물론 공 예배에 모두 참석하는 게 원칙이다. 대신 그 후에는 부모님이나 우리가 평생 너에게 교회 가자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교회 가자고 말하지 않겠다'라는 말에 A가 동의했다. 억지로라도 1년만 고생하면 평생의 복권을 얻는 것이 나쁘지 않아서였다. 1년은 길 수도 있지만,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그로부터 A가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후에 다른 소리 더 안 들으려고 주 1회 정도는 새벽기도회도 참여했다. 처음에는 주리가 틀릴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약속이 약속이었던 만큼 시간이 불가능할 때 외에는 공 예배의 모든 순서에 참여했다. 목사의 설교도 경청했다. 결과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6개월도 안 되어 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신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던 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빈정대던 마음이 사라졌다. 말할 것도 없이 생활 속에서 경험되는 신으로 인해, 이후 두 형 이상으로 신실한 주의 자녀가 되었다.
유명한 저널리스트요, 뉴스 진행자인 해리스 포크너(미국, 1965~)의 실화 모음집, 《믿음은 지금도 산을 옮긴다》 (이원기 옮김. 엘페이지, 2024)에 소개된 처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4월 어느 날, 고교 졸업반 두 아이가 대서양 해변에서 수영을 즐겼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인지라 한적해서 더없이 놀기에 좋았다. 그러다가 두 아이가 내기했다. 450m 떨어진 건너편 섬의 포구까지 헤엄쳐서 건너기로. 그날 아이들은 소형선박들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뉴스를 듣지 못했다. 아이들이 수영을 시작했을 때, 얼마 후 해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한 두 아이가 나중에는 방향을 잃어 등대를 보고 헤엄쳤다. 그것도 거센 파도가 막아 두 아이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급기야 두 아이가 망망대해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어느 순간 몸이 물 위로 떠 오르자, 약속한 듯이 헤엄치지 않기로 결심하고 크게 부르짖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를 구하도록 무엇이든지 좀 보내주세요."
그 몇 주 전, 요트에서 겨울을 보내는 한 사업가가 정박해 둔 요트를 급히 옮겨야 했다. 해변을 리모델링한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바빠서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을 놓쳤다. 42년 된 요트를 정비할 새도 없이 사업가가 친구 셋을 싣고 떠밀리다시피 출항했다. 얼마 후 큰 파도가 일었다. 할 수 없이 먼바다로 이동할 계획을 거두고, 만 쪽으로 이동 경로를 바꾸었다. 다행히 요트가 견딜만했다. 그들이 안정을 찾는 순간,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귀를 기울였다. 300미터 뒤에 점 두 개가 보이는데, 소리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심스러우나 신속하게 달려가, 2시간이나 바다 위에서 사력을 다하여 견디고 있는 두 아이를 구조했다. 저체온증으로 해경의 응급조치를 받은 후,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물 위에 뜨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기운이 빠졌을 때 물 위에 떴어요. 그래서 큰 소리로 기도했어요." 요트 주인도 말했다. "신이 아이들을 구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믿음을 위해 거기로 인도했습니다."
분명히 21세기 지금도 1세기 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기적은 계속된다. 의술에 의해서도 계속되거니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혹은 기도 안에서 계속된다. 죽은 것처럼 곤히 잠자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 내가 밟는 정원의 풀과 새소리가 어제와 다른 것, 기적 아닌가? 출근하며 온몸으로 받는 햇살도 어제와 다른 모양이니, 기적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 내 삶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 나를 지탱해 준 그것들, 다 기적이었다.
두 아이가 바다 한가운데서 죽음의 공포로 부르짖을 때, 아이들보다 더 급한 이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아이들을 만든 창조자였다. A가 마음과 생각을 바꾼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A가 신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신을 만나 담판을 지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소한 경험들이 기존의 틀을 깨뜨렸다. 하여 교회에 출석한 이후 A는 더 이상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신은 언제든지 달려온다. 내가 미처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기적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어머니, 할머니, 친구, 이웃에게 끊임없이 권유받으나 아직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그대여, 1년만 작정해 보라. 크고 작은 기적들이 그대를 덮을 것이다. 응급한 일이 생겼는가? 하늘로 크게 소리쳐 보아라. 오래된 보트라도 끌고 그분이 달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