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글우글과 부글부글
러닝을 하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
20년 전과는 다른 태도로 같은 감정을 대하는 나를 발견했다.
20년 전이면 초등학교 때니까
당연히 지금쯤이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미묘한 차이는
아주 중요한 성장신호였다
5살 때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기저귀를 찬 채로 성인풀에 들어가 동동 떠있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놀람과 신기함, 그리고 혹시 모를 미래의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주려고 수영을 배우게 했다. 그리고 나는 수영을 꽤 좋아했다. 한창 남녀의 신체적 강점이 차이나기 시작하는 5,6학년 때였는데, 우리는 각자 반대표로 선출되기 위해 빡센 훈련을 했다. 나는 6학년,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5학년 남자아이들이었다. 준비운동을 마치면 기본 100바퀴 시합을 했다. 한바퀴 질 때마다 오리발로 맞았다.
(다행히 나는 별로 안 맞았다...)
맞고 훌쩍훌쩍 우는 동생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는 건 싫었고 최선을 다해 이겼다
98번 정도 이긴 것 같다
정말 심하게 훈련한 날은 다리에 쥐가 나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꼭 훈련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물 속에서 많은 감정을 해소했다. 많이 울었는데, 물 속에서 울면 아무도 몰라서 눈물을 감추기 쉬웠다. 그래서 한창 사춘기에 속상한 감정, 억울한 감정, 서운한 감정, 때로는 고요한 감정들이 물 속에서 몸과 함께 유영하도록 했다.
20년이 지난 어느날, 러닝을 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부글부글한 감정이 올라왔다. 하루 중 불편했던 감정이 수면위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그날은 내가 계획하지 않은 어떤 사건이 끼어들면서 하루종일 찜찜한 날이었다. 나를 만난 상대는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더 낯설었다.
그때 이 감정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수영 하는 척 물 속에서 감정을 유영할 때, 감정을 어디로 던져야 할지 몰라서 내 눈물이 수영장 물인 것처럼 숨겼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어디로 '던져야 할지 몰라서' 부글부글한 채 미완성으로 끝난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똑같은 감정이 들어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의 나는
감정을 어딘가로 던지려 하지 않는구나
감정을 마주하고 느끼려고 하는구나
피하지 않는 어른이 된 것이 참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