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제 : 내년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아침 8시 반, 아이를 학교에 드롭해주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요즘 주로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집 근처에 있는 공립 도서관이다. 모든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는데, 이곳이 거리상 가장 가깝고 최신식으로 건축되어 가장 좋은 시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무언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거나, 자료를 찾아봐야 할 때 굳이 집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더 집중하고 싶을 때 이곳을 주로 찾게 된다. 집에 있다 보면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무언가를 치우거나 하게 된다.
전망이 좋은 창가에 앉아서 맥북을 펴고 이메일도 체크하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서칭 하기도 하며, e북으로 다운로드한 책을 읽기도 한다. 도서관에 굳이 가서 도서관 책은 안 읽고 e북을 읽고 있는 모습도 다소 기이하기도 할 것 같다. 회사를 안 나가기 시작한 게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 인생의 대부분 (어떤 글을 보니 대한민국 직장인은 잠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 본인의 시간 65%를 일하면서 보낸다고 한다)을 사무실, 그것도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갖고 먹고살았던 터라, 무언가 이렇게 어딘가에 앉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하루를 제대로 보낸 거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이렇게 몇 시간을 보내면 무언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뿌듯한 마음에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의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술맛이 어떠냐? 달아요. 오늘 너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거야."
도서관에는 일부 한국어로 된 책들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의 영문본들도 빌려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이미 갖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키의 책을 찾게 되면 반가운 마음에 몇 페이지 읽어 보게 된다. 최근에 DVD 플레이어도 샀는데, 도서관에 가족들이 함께 보기 좋은 영화 DVD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물론 간단하게 결제해서 TV로 볼 수 도있는 세상이지만, 무언가 옛날 느낌으로 DVD를 고르고 집에 가져와서 플레이어 넣고 다 같이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구매한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 타이틀도 대여가 가능해서 가끔 게임 고르는 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에 보고 싶었던 하루키 원작의 일본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반가운 마음에 대여해서 보았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 기간이라고 하기에는 짧기도 하고, 어찌 보면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 간의 나의 인생은 거의 해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형국이었다. 새로운 직무,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동료들... 언제나 단 한 번이라도 여유롭게 시간을 부여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새로운 환경에 '툭' 하고 던져진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주위로부터 "금방 적응했네"라는 말을 들으면 적응이 된 것이라고 스스로 느끼면서 살아왔다. 아직까지도 적응이 완벽히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고, 일상의 감정에 UP & DOWN이 존재하는 걸 보니, 보다 안정감을 찾으려면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성공을 위한 큰 밑거름이라거나, 실패를 해야 성공도 한다는 등 다양한 듣기 좋은 명언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미래에 대해서 불안한 것은 불안한 것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더라도 당장의 불안한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서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그것에 맞게 플랜을 짜 보고 상상을 해보면 한없이 자신감에 넘치다가도, 혹시 어느 한 부분에서 그렇게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창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들에 자주 빠지는 요즘이다. 나중에 언젠가 나도 지금의 이 시간들을 반추할 때가 또 오겠지?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곤 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러긴 했다.) 올 한 해는 처음 반년과 후반부 반년이 너무 달라서 마치 각기 다른 2년을 지낸 거 같은 기분도 든다. 내년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와이프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내년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 보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