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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Dec 05. 2022

[시카고타자기] 미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 벌목하기

#2 생나무 크리스마스트리 벌목하기 @Richardson Farm

미국의 최대 명절인 11월 24일 Thanksgiving이 지나고 바로 다음날부터 미국은 마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기저기서 캐럴이 들리고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뀌었다. 뭐 9월부터 모든 쇼핑몰에서 캐럴이 들렸던 필리핀에 비하면 양반이지만서도, 무언가 좀 빠른 거 아닌가 싶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그렇듯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기분 좋은 것이다.


몇 년째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번 우리 가족의 미국행에 동참하지 못했다. 와이프 할머님이 선물로 주신 자그마한 트리였는데 몇 년간 우리 집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주었다. 가족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도 다녀오고 필리핀도 다녀왔는데, 너무 오래 써서 이번에는 결국 가져오지 못했다. 어느 날 와이프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트리를 자르러 가자했다.

"응? 트리를 잘라와?"  

미국에서는 트리를 전문적으로 키워서 판매하는 농장들이 있어서 대부분 살아있는 트리를 벌목해서 집에서 꾸민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트리는 훨씬 가격이 비싸고, 실제 나무 트리가 훨씬 가격도 저렴하고, 친환경적으로도 괜찮다는 것이다.

"오~ 그래? 그래 아이와 주말 액티비티도 될 겸 가보자!"


구글 검색을 통해 발견한 장소는 'Richardson Farm'이란 곳인데, 집에서 1시간 남짓 거리이고 규모도 꽤 크고 소소한 볼거리, 먹거리도 있어서 추천하는 곳이었다.

"근데 나무를 어떻게 들고 오는 거야?"

"응 차위에 묶어서 오면 된다는 데"

다행히 확인해 보니 차 중 하나가 스테이션 웨건이어서 루프랙이 있었어 쉽게 매달 수 있을 거 같았다. 알아보니 루프랙이 없으면 차문 안으로 돌려서 지붕에 묶어서 실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만약에 한국이었다면 아마 현장에서 고르고 자르는 액티비티까지 하고 아마 각자의 집으로 배송을 하는 시스템이었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도착해보니 꽤 큰 규모의 농장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남들 따라서 톱을 하나 챙기고 트랙터가 끌어주는 웨건에 탑승했다. 날씨가 꽤 추웠는데 다들 털모자에 장갑, 패딩잠바 입고 즐거운 모습들이었다. 우리 뒤편에는 큰 강아지를 무려 세 마리나 데려온 집도 있었다. 우리는 비글미 넘치는 여덟 살 아들 하나도 데리고 다니기 벅찬데, 저런 큰 개를 세 마리나 데려와서 왜건에 태우다니 대단하다!  가는 길에는 이제 막 심어 놓은 수백여 그루의 베이비 트리(?)들이 보였고 10분 정도 안으로 들어가니 적당한 사이즈의 아이들이 보였다. 우리가 가져갈 만한 트리들의 연도를 보아하니 2014,2015 정도여서 대략 7~8년 정도 된 것들이었다. 2030년쯤에는 초입에 봤던 트리들을 또 가져가러 사람들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그때 또 오려나?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어렵다 했던가, 트랙터가 내려준 장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너무 춥기도 했고) 적당한 사이즈고 적당히 골고루 가지들이 펼쳐진 녀석을 찾았다. 집에서 미리 내 키를 기준으로 사이즈 측정을 해와서 나를 줄자 삼아 키를 재 보았다. 선택을 하게 되면 톱을 밑으로 넣어서 쓱싹쓱싹 베어 오면 된다. 어떤 미국인은 영화에서 살인마가 사용할 만한 전기톱을 들고 오기도 하였다.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게 아이와 한쪽 씩 잡고 쓱싹쓱싹 톱질을 하니 나무가 잘렸다. 너무 진짜라서 더 가짜 같기도 한 트리의 모양을 한 나무였다.

다시 돌아오는 트랙터를 잡아타고 출발지로 돌아오면 돌돌 돌아가는 원형의 기계에 트리를 집어넣는다. 불순물 제거와 가짜 트리 돌돌 말듯이 얇게 접어주는 역할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 트리의 번호표를 받아 들고 추운 몸을 녹이러 스토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핫초코를 무료로 나눠주고 다양한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도넛 맛집이라는 리뷰를 보고 온 지라 바로 도넛도 하나씩 사서 공짜 핫초코와 먹었다. 춥고 배고파서 그랬는지 몰라도 엄청 맛있어서 흡입하고 말았다. 인상 깊은 점은 겨울이 끝날 때 나무가 시들면 처리할 수 있게 대형 비닐도 판매한다는 것이다. 대형 비닐에 나무를 넣어서 재활용에 내놓으면 된다니 간단하다.


집에 올 때 번호표를 주니 직원이 가져와서 차 지붕에 노끈(이 것도 자연산)으로 정성껏 묶어주었다. 꼼꼼하게 묶어주고, 친절하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준 청년이 고마워서 팁도 조금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노끈을 풀으니 자연산 나무답게 몸을 스르륵 펴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좁은 집에 큰 나무가 들어서니 처음에는 너무 큰 것을 샀나 싶기도 했지만 자연의 향이 묻어 나와 좋은 기분이 들었다. 미리 주문해 놓은 트리 받침대에 올리고, 오나먼트로 장식을 하고 나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만의 트리'가 완성되었다. 핫 초코 포함 트리 가격이 모두 85불인데 비슷한 사이즈의 가짜 트리가 보통 300불가까이 하니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무료 피톤치드 향은 덤이다. 온가족이 독감에 걸려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괴로웠는데 이러한 활동들이 우리 가족의 일상에 소소한 기쁨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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