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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Apr 04. 2023

[시카고타자기] 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산다는 것

#13 "38  at the Garden"을 보고 느낀 소회.

아이의 봄방학을 맞아 바다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우리는 플로리다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비행이었지만, 우연히 보게 된 단편 다큐멘터리를 보고 여러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바로 "38 at the Garden"이라는 전 NBA 선수였던 제레미 린(Jeremy Lin)을 다룬 38분짜리의 단편 다큐멘터리였다.(Duration은 제목과도 연계된다) 약 10여 년 전 NBA에는 한 아시안 선수의 등장으로 그야말로 광풍이 몰아닥쳤다. 신입 드래프트에도 탈락했고, 2부 리그를 전전하던 무명의 동양계 선수가 가장 큰 마켓인 뉴욕의 메디슨 가든 경기장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경기당 30점을 넘게 득점하면서 말이다.

플로리다의 선셋은 소문대로 장관이었다

뉴욕타임스, CNN 등의 이른바 메이저 언론들은 그의 돌풍을 'Linsanity' (Lin+Insanity)라는 신조어로 대서특필했다. 그야말로 만화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활약이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탈로 가드 진이 부족해진 코칭스태프의 궁여지책이었지만, 그는 보란 듯이 모두를 깜짝 놀랄 킬 만한 대활약을 보여주었다. 38이란 숫자는 뉴욕 홈구장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그가 보여준 커리어 하이 득점을 표현하는 숫자이다. 물론 요즘에도 일부 선수가 갑자기 이른바 '미친' 활약을 하면 간헐적으로 진행되고는 하지만, 당시에 제레미 린은 별도의 약물 검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타임지 커버를 장식한 제레미 린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제레미 린을 비롯한 이른바 미국 주류사회에 자리 잡은 아시아계 언론인, 연예인 등이 등장하는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레미 린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에 대한 코멘트를 기본으로 대부분의 시간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으로 사는 것에 대한 리얼리티를 말해주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주류사회에 자리 잡은 이른바 '성공한 미국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같이 본인들이 자라면서 느꼈던 다양한 인종차별,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그 처절한 심정에 대해 토로한다. 어찌 보면 나처럼 100% 이민자의 신분으로 와 있는 아시안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당연히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이 느끼는 '마이너'한 기분이 더 차별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는 어차피 그 부분은 내려놓고 와서 큰 욕심이 없지만, 그들은 똑같이 경쟁하고, 똑같이 노력하는데 결과적으로 더 위로 오를 수 없는 일종의 유리천장을 살아오면서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성공한 아시아계 미국인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포츠 분야에서 아시안이 갖고 있는 피지컬 적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시안이 잘하는 분야가 분명히 존재하지만(주로 정교함, 집중력을 요구하는 종목들), 미국이란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스포츠 즉 야구, 농구, 풋볼, 하키 등에서 동양인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특출 난 역량으로 해외에서 유입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박찬호 등 한국의 몇몇 메이저리거나, 야오밍 등 중국의 농구 선수 등), 미국 내에서 자라면서 스포츠로 특기로 대학에 가거나 프로 스포츠에 입성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특히나 피지컬이 반이상 기여하는 NBA에서(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거라는 명언도 있지만, 그 심장이 남보다 세 배는 뛰어나야..) 평범한 체구의 동양인이 당대 최고 스타였던 코비 브라이언트 등을 압도하며 경기를 씹어먹었으니, 제레미 린은 단순히 스포츠적인 쾌감을 넘어,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맺힌 한을 풀어줬던 수준이었다.

코브 브라이언트를 농락하던 제레미 린

최근에 우연한 기회에 미국 인구 분포를 찾아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국에서 백인의 비중이 무려 86%, 아시아계(중동, 인도 등 포함)는 겨우 5%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아시아인들을 자주 보다 보니, 그보다는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3.3억 인구 중에 단 5%라는 사실에 새삼 그 규모의 '마이너'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찾아갔던 플로리다의 '클리어 워터'라는 지역은 주로 로컬사람들이 찾아가는 휴양지였다.(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주로 마이애미, 올란도 쪽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오래간만에 우리 가족만 거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나 히스패닉 계였어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방인의 기분이었다.(원래도 이방인인데, 다시 한번 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음) 다르게 말하면, "와아! 미국은 정말 백인들의 나라였구나!" 싶었다.


제레미 린은 그 후 최근까지도 다른 팀들을 돌아다니며 벤치 멤버로 고만고만한 활약을 하다가, 더 이상 찾는 팀이 없어지자, 대만 프로리그로 가서 이른바 '조던 놀이'를 하며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 이제 30대 중반이 된 그는 여전히 NBA로 돌아오기를 끊임없이 갈망한다고 전해진다. 앞으로도 제레미 린 같은 경우가 나오기는 드물겠지만, 나중에는 혹 나오더라도, 더 이상 'Insanity'가 아니라 떳떳한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로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희망을 가져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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