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팁 문화에 대한 피로감, 변화 중인 미국(?)
한국에는 없고, 미국에만 있는 수많은 문화들 중에 가장 어렵고 불편한 것은 아마 '팁 문화'일 것이다. 일단 이른바 '정찰제'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청구된 계산서에서 팁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지 않을뿐더러, 도대체 얼마를 내야 적당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유럽 일부국가나 멕시코에서도 팁 문화가 존재하는데 아마 20% 가까이 팁을 내는 나라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밥값으로 100불이 나왔다고 치면 여기에 세금 10%가 붙고, 팁 20% 까지 감안하면 최종 내가 내는 금액은 132불에 달하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이다. 일부 식당은 % 별로 실제 팁 금액이 나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직접 산수를 해서 금액을 써놓아야 한다. 상당히 귀찮은 프로세스다. (소수점 두 자리 덧셈이다)
*참고로 팁을 15% 내면 "난 너의 서비스가 상당히 맘에 안 들어", 18% 내면 "뭐 그냥 그럭저럭 괜찮았어", 20% 나 그 이상을 내야 "너의 서비스에 감사합니다"의 느낌이라고 한다.
최근에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좀처럼 변할 거 같지 않아 보이던 미국의 팁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팁 문화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여론이 크게 퍼져나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앉아서 서빙을 받는 레스토랑보다는 팁을 낼 필요 없는(또는 기분상 1~2불 정도 팁 박스에 넣어주면 되는) Self-service 형 식당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이러한 식당에서도 계산할 때 팁을 내가 터치패드에 얼마나 낼 지를 누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과감 없이' No tip'를 누르려면 상당한 얼굴 두께가 요구되기도 한다.(서빙을 받지 않으니 팁을 안내는 것인데, 무언가 내가 구두쇠가 된 거 같은 느낌을 잠깐 받게 된다)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에 서비스 인력들이 대거 이탈되고(주로 히스패닉 계열), 정부 지원금으로 다시 일자리로 복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레스토랑들은 여전히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모든 식당에 'Hiring' 사인이 붙어있고, 실제 레스토랑도 사이즈 대비 직원 수가 부족하여 운영 시간을 단축하거나, 제한된 서비스만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오픈하는 새로운 가게들은 상당히 다른 스타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집 근처에 자주 가던 스포츠펍 스타일의 식당이 리뉴얼되어서 들러보았다. 주문을 하려면 초입에서 카드를 발급받고 그 카드로 키오스크에서 안주도 알아서 주문하고, 생맥주도 직접 따라 마시는 방식이었다.(약간 한국의 찜질방 같은..) 직원들은 프런트에만 있고, 아마 주방 안쪽에 일부 있을 것이다. 알아서 직접 모든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하기도 했지만, 팁을 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른바 요즘 스타일의 미국 식당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스포츠펍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좀처럼 잘 변하지 않는 미국이지만, 최근의 팬데믹 환경, 경제적인 상황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팁을 받는 레스토랑의 서버들은 기본급이 적고, 주로 팁으로 본인의 급여가 대부분을 이루게 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보수를 지급받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식당의 가격표에는 그 팁이 이미 반영되어서 책정이 된 것일 수도 있으니, 결국은 같은 얘기인데, 미국에서는 무언가 안내도 될 돈을 더 내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서 더 거부감이 생기는 듯하다. 앞으로 미국에서도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로봇이 서빙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면 팁 문화가 완전히 사라질지 궁금해진다. 한편으로는 무언가 더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거 같아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