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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May 02. 2023

[시카고타자기] 스노우버즈를 꿈꾸다

#14 철새처럼 따뜻한 계절에서만 살 수 있을까?  

지금 살고 있는 콘도(한국식 아파트를 여기에서는 condo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아파트먼트는 회사가 소유하고 세입자는 월세로 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에 바로 옆 주차구역에는 노부부가 산다. 아저씨는 보행기에 의존해야 걸을 수 있는 거의 팔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며, 아주머니는 상대적으로는 젊어 보이는 미국인 부부다.  한국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시길래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했다가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다소 놀라웠다. 플로리다 주에서 발급한 번호판인 것이다. 자세히 여쭤보니 이 부부는 일 년의 반은 시카고에서 보내고, 시카고가 추워지는 초겨울부터는 플로리다로 가서 지낸다는 것이다. 신문기사에서나 봤던 바로 그 스노우버즈(Snowbirds) 족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스노우버즈는 말 그대로 '철새'란 뜻이다. 밥벌이나, 자녀교육에 구애받지 않는 주로 은퇴한 미국인들 사이에 상당히 많은 삶의 방식으로, 추운 겨울 시즌에는 남부 쪽에 있는 따뜻한 곳(주로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에서 거주하고, 봄이 되면 다시 본인이 살던 북부 쪽으로 돌아와서 지내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 약 500만 가구가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우리 옆집 노부부도 매해 11월 쯤되면  약 14시간이 걸리는 플로리다에 운전해서 갔다가, 다음 해 5월쯤 시카고에 봄이 찾아오면 돌아오는 것이다. 아직 젊은 나도 하루 6시간 운전하기도 힘든데, 보행기를 쓰시는 팔순 노인이 그 장거리 운전을 한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스노우버즈가 되려면 우선 돈벌이 걱정이 없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거나, 사업장에 나가봐야 하는 사람은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어도 실행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노우버즈족은 은퇴한 노년층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삶이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카고의 봄과 여름, 초가을까지 만끽하다가, 찬바람이 불 때쯤 다시 플로리다로 가면 아주 덥지고 않고, 쾌적한 여름날씨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플로리다의 봄, 여름은 허리케인이 잦고, 동남아 뺨치게 덥고 습해서 살기에 좋지 않다고 한다) 또한 일 년에 반반씩 지낼 수 있는 집이 양쪽에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가전, 가구 등도 따로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일 년에 두 번씩 대형이사를 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또 집이 망가지지 않도록 내가 없을 동안 내 빈집을 관리해 줄 누군가(?)도 필요하다. 미국의 특성상 우편함을 일주일만 비우지 않아도 우편을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릴 것이다.


얼마 전, 아이의 봄방학을 이용해서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 템파로 여행을 다녀왔다. 마이애미 쪽은 이전에 출장으로만 두어 번 가본 적이 있었고, 최근에 마이애미 비치에서 대학생들이 난동을 피워 '통행금지'까지 생겼던 터라, 상대적으로 한적한 반대편 '클리어워터' 지역을 다녀왔다. 네이버 블로그 등으로 미리 조사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더 적합한 장소로 '클리어워터 비치'를 추천하였다. 3월 말에도 여전히 겨울 같은 시카고를 빠져나와 플로리다에 도착해 보니 완전 지구 반대편으로 온 듯한 기분이었다. 햇살은 뜨겁고,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바다도 따뜻해져 있었다. 지난 1년여간 바다에 목말라 있던 우리 가족은 바다 놀이, 그 유명하다는 '플로리다 선셋'도 만끽할 수 있었다.

클리어워터 비치 전망
아직은 차갑지만 물놀이가 가능하다
이름처럼 투명한 바닷가
돌핀투어 중에 돌핀을 진짜 봤다. 못보면 100% 환불해준단다
블로그보고 찾아간 히든비치

아이가 대학에 가려면 약 9년 정도가 남았다. 아직 어려서 인지, 본인은 엄마 아빠랑 같이 살면서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사춘기 지나면서 집에서의 탈출을 꿈꾼다고 한다. 이 녀석의 행보도 지켜봐야 알 것 같다. 플로리다 해안가를 렌터카로 드라이브하면서, 앞으로 9년 뒤에 일상의 반은 여기에서 지내고, 봄이 되면 다시 시카고로 돌아가는 '철새'같은 삶을 상상해 봤다. 편도 14시간의 드라이빙은 고역이겠지만, 남은 평생을 오로지 따뜻한 날씨와 함께하는 것은 꽤나 괜찮은 삶이겠구나 싶었다. 물론 9년 뒤에 은퇴도 하고, 양쪽에 집을 따로 마련하려면 부지런히 돈도 많이 모아놔야 가능한 얘기이다.

플로리다 선셋은 소문대로 아름다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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