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온라인 영어 튜터링 플랫폼 'Preply'로 미국말 배운 후기
영어를 배운 지 어느덧 30년은 훌쩍 넘어가는 거 같은데도 여전히 나는 영어가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물론 내 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할 수도 있고, 지난 몇 년 간은 영어를 써서 비즈니스도 진행해 왔지만 여전히 영어는 완성될 수 없는 영역의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에 온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영어에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던 나지만, 로컬의 미국인들을 만나면서 내 영어 자존심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미국이었고, 그들은 나에게 영어가 아닌 '미국말'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인 데다가, 남자의 특성상 영어를 할 때 낮은 목소리로 옥타브의 변동 이 거의 없이 발음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마트에 가거나, 관공서에 간다던지..) 미국인을 만날 때에는 굉장히 오버해서 크게 말하고 인토네이션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부분 그들은 내가 하는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말해줄래? 뭐라고?"라는 반응이 돌아오게 된다. 내가 손님인 경우는 그래도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들으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엄청난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 생활에 더 완벽히 적응하고자, 영어가 아닌 로컬 미국말을 늘리고자, 오랜만에 영어 수업을 듣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동안 꾸준히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회사의 울타리는 얼마나 따뜻했던가!) 전화영어 혹은 점심시간을 활용한 원어민 튜터링 등을 해왔던지라, 그룹으로 하는 수업보다는 1대 1 수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만나러 매번 약속 장소를 정하고 밖으로 가는 것도 힘들 거 같아 온라인 플랫폼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우연히 찾게 된 플랫폼이 'Preply'(프리플리)였다. 미국의 유명 대학생들을 튜터로 내세운 다른 서비스 업체도 눈에 들어왔지만, 30분에 $40를 육박하는 부담스러운 비용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프리플리는 수업이 기본적으로 1시간으로 구성되어 기본적으로 가성비가 뛰어났다.
튜터를 내가 골라서 무료 수업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튜터마다 1시간 수업료가 다 다른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최저 $15에서 $50 정도로 분포되어 있는데, 주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강사들이 수업료가 낮고(주로 초급 학생들을 위한 강사인 듯), 미국이나 영국에 거주하는 원어민들의 수업료가 비싸게 책정되어 있었다. 마치 에어비앤비처럼 튜터들의 소개글이나 프로필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튜터를 골라서 수업을 신청하면 되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미국에 있는 남자 튜터였는데, 무언가 나처럼 남자들에게 발음을 교정받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에서였다. 마치 zoom미팅처럼 1대 1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각종 자료들도 화면에 띄워서 공유하고, 메모장에 그날의 vocabulary 등 수업노트도 저장할 수 있었다. 첫 수업은 나름 괜찮았지만 강의료도 조금 비쌌고, 강의 애티튜드가 조금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른 강사를 찾기로 했다.
우연히 찾은 다른 분은 놀랍게도 멕시코에 살고 있는 미국인 아주머니였다. 좋은 인상에 은발의 쇼커트가 인상적인 분이었는데, 강의료도 합리적이고 (시간당 $25, 나중에 주 1회 정규 등록하니 추가 할인가로 해주셨다!) 왠지 멕시코에 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워서 무언가 공통이 주제가 많겠구나 싶었다. 역시나 첫 수업을 해본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는데,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은 멕시코에도 살아보고, 필리핀에도 살아본 나의 인생 스토리에 대해 상당히 흥미로워했으며, 내가 주기적으로 글을 쓴다고 하니, 본인도 미국판 '브런치' 같은 곳에 글을 쓴다며 매우 기뻐하였다. 얼마 전에는 브런치에 올린 글 하나를 AI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번역본'으로 보여주었는데, 수업 중에 실시간으로 표현도 고쳐보면서 같이 공유하기도 하였다. 내가 한국말로 쓴 표현들을 거의 그대로 영어로 그 어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첫 미국인 구독자였다.
서로의 일상을 묻고, 살아온 얘기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이란 시간도 꽤나 금방 흘러간다. 생각해 보니 와이프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와 한 시간 가까이 내 마음에 담긴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미국말을 배우려고 시작한 영어 수업이었는데, 일종의 힐링캠프 같기도 하고, 심리 상담 같은 시간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선생님은 원래 미국에서는 학교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은퇴 후 멕시코의 아름다운 소도시인 '산미구엘 데 어젠다'에 잠시 거주하면서 남편(파트너라고 표현함)과 함께 어느 카페에서 오후에는 음악연주를 하고, 오전에는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거의 60이 넘으신 분인데 참 멋있게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거 같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진정한 인생 2막인 것이다.
매일 하면 좋겠지만, 비용을 생각해서 매주 1회 1시간을 배우고 있다. 집에서 가볍게 접속하면 되니 시간도 절약되고, 부담 없어 좋다.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 있던지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내 영어가 얼마나 늘었냐고 묻는다면? 답은 "글쎄다"이다. 여전히 우리말로 먼저 떠올리고 영어로 변환해서 말하는 바람에 '콩글리시'식 표현도 많고, 아직은 발음도 세련되지 못한 거 같다. 요즘에는 미국 학교에 슬슬 적응 중인 아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아빠 발음이 너무 이상해!" 한대 쥐어박고 싶지만, 반박할 수 없는 게 슬픈 현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