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스펙터클했던 나의 비자 취득 스토리 (2)
집에 가는 길에 멍해지고 허탈한 기분이었다. 지난 몇 달 간을 준비해왔는데, 이제 와서 처음부터 다시라니.. 이유는 최근에 방문연구 비자의 합격률이 상당히 저조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학교의 스폰서 없이 나처럼 self-funded의 케이스는 모두 비자 인터뷰에서 탈락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집에 돌아가서 와이프와 맥주를 한잔하면서 심각하게 논의했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비자가 안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바로 원장님에게도 내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원장님에게도 끝까지 더 밀어붙여달라 부탁했다.
"혹 비자를 못 받더라도 원망은 하지 않겠습니다."
출근길 정체를 피하려 새벽같이 광화문에 도착하여 미국 대사관 근처의 스타벅스를 찾았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미국 대사관은 처음이었다. 그 주변은 많이 지나갔어도 정작 그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인 것이다. 항상 무장한 군경들로 둘러싸인 그곳은 무언가 평생 '나랑은 상관없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들어간 지 약 2시간여 만에 나는 대사관 출구를 빠져나왔고, 내 손에는 비자 합격 서류가 들려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지난 수 개월이 간의 노력과 마음고생이 이렇게 간단히 끝나는 것이었나 싶은 허탈함도 있었고, "나 큰 사고 쳤네.. 이제 어떻게 얘기하지?"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실 그 시점까지 부모님에게도, 주위 친구들, 친한 동료들에게도 관련한 얘기는 속 시원히 하지 못했다. 비자가 나오기 전이니 그 어떤 얘기도 꺼낼 수 없던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우선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유학원장에게도 카톡을 했고, 그는 아주 놀라는 카톡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도 역시나 최근 추세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자 인터뷰 대기선에서 약 한 시간을 대기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탈락하고 합격하는 모습을 봤다. 나처럼 방문 연구원으로 보이는(또한 교수님처럼 보이는) 어느 분은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와서 아주 수월하게 인터뷰 후 기분 좋게 나가는 모습도 봤고, 영어가 제대로 안되시는 내 어머님 뻘 되시는 어느 분은 수차례 실랑이 끝에 여행비자조차 거절 레터를 받고 나가셨다. 3명의 영사 중에 네이버 카페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다소 깐깐한 영사도 보였고, 한 명 한 명 호명되는 순서 상 내가 그 앞으로 가야 할 차례였다. 그때 내 바로 앞에 갔던 어느 여자분이 아주 현란한 영어솜씨로 거의 1분도 안되어 인터뷰가 종료되었고, 거의 1초 상간으로 그 '깐깐한' 영사가 나를 쳐다보는 찰나에 기적적으로 그 옆에 있는 이민자처럼 보이는 영사가 나를 호출하였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사람이 '깐깐 영사'에게로 불려 갔다.
"오~ 신이시여.."
정작 영사 앞에 서니 덜컥 긴장이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종이가 닳도록 외웠건만 긴장이 되다니.. 다행히 예상했던 질문들이 들어왔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 나갔다.
"미국에 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직업이 PD라고 했는데 왜 연구가 필요합니까?"
류의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고, 두어 가지 질문 후에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어디냐는 질문에 최근에 우리 회사에서 만들어 아카데미 상을 받은 그 작품을 아냐고 되묻자 씩 웃으며 안다고 하는 순간, 무언가 좋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서류에 사인을 받았고, 내 비자는 그렇게 '통과' 되었다. 할렐루야
다시 회사로 가는 길에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머릿속은 멍해졌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걱정이 불현듯 다가왔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아! 비행기표부터 사야겠구나, 부동산 사장님한테도 연락해야겠네,, 엄마한테는 언제 얘기 하지? 아.. 회사 윗분한테는 언제 말씀드려야 하나.. 등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오게 되었다.
(다음 회에서 계속)
*표지설명: 아이의 섬머캠프 장소인 'The Grove' 주차장에서 교실 올라가는 숲에서 조우한 사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