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스펙터클했던 나의 비자 취득 스토리 (1)
미국이란 나라는 여느 나라들처럼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 이후 더 타이트해진 국경 얘기, 멕시코 불법 이민자 얘기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기본적으로 세계에서 국경의 콧대가 가장 높은 나라일 것이다. 최근에야 ESTA라는 게 생겨서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온라인을 통해서 편하게 비자를 신청해서 한 달 정도의 방문은 쉬운 편이지만, 그 외에 공부를 하거나 장기간 방문을 하려면 꼭 '비자(VISA)'라는 것을 받아야 하며, 그 과정의 끝은 언제나 광화문에 있는 그 '악명 높은' 미국 대사관에서의 비자 인터뷰를 통과해야만 한다. 내 돈 내고 가서 공부도 하고, 여행을 해서 달러를 쓴다는 데에도 아주 철저한 검증을 거친 사람들에게만 그 문호를 열어주는 참 이상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처음에 미국에 가려고 했을 때 유일하게 가능해 보였던 비자는 바로 학생비자였으나,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학생비자를 받으려면 최소한 MBA 과정 정도는 되어야 영사관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나이에 멀쩡히 직장 다니다가 '영어 좀 더 배우려고요' 하고 어학연수 1년 과정 신청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오해를 살 것이다. 참고로 비자 인터뷰를 타이트하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비자 같은 '비이민 비자'를 받은 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눌러앉는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함이란다. 따라서 모든 비자 인터뷰의 핵심 포인트는 '나는 반드시 이 비자 기간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MBA 과정을 알아보는데, 일단 이른바 유명 MBA는 그 비용도 상당하고(학비만 거의 2억에 가까운..), 입학 조건도 상당히 까다로웠다. 토플이나 GMAT 점수 커트라인도 높아서 준비과정에만 2년 여가 걸린다고 하여, 당장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나와는 맞지 않아 보였다.
수많은 고민 끝에 다소 만만한 MBA(입학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학비도 저렴한) 과정을 찾아보았고, 이를 상담하기 위해 서초동에 있는 한 유학원을 찾았다. 그 유학원은 비자 인터뷰 준비를 상당히 꼼꼼하게 해 준다고 잘 알려진 곳이었고, 나처럼 나이가 좀 있어서 인터뷰에 난항이 예상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유학원 상담을 진행하던 첫날, 원장님이 나에게 갑자기 이런 제안을 했다.
"아버님 상황과 현재 직장 경력을 보니까.. MBA에 큰 뜻 보다 미국 가시는 거 자체가 더 목적이시라면, 방문 연구원은 어떠세요?"
"방문연구원이요? 그거는 대학교수나 공무원 분들 안식년에나 가능한 비자 아닌가요? 어디서 대충 들어본 적은 있는데, 저 같은 일반 직장인도 가능할까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지만, 진짜 가능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그 비자를 통해 나는 지금 미국에 성공적으로 입국하였다.
한 직장에서 미련하게 17년간 그 흔한 이직한 번 못하고, 꾸준하게 다녔던 것이 오히려 득이 된 것이다. 15년 이상 한 분야에서 근무한 경우 그 전문성이 인정되어 비자를 받은 경우가 몇몇 케이스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형태의 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확률은 반반(정확히 유학원장은 51대 49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성공이 51)이었다. 90년대 가수 '솔리드' 헤어 스타일을 한 그 원장님은 나에게 "어떻게 한번 도전해보시겠습니까?"라고 도발적으로 물었고,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네!" 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 준비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거라 했지만, 자기를 믿고 따라와 달라는 그 자신감 넘치는 말에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용 측면이나, 비자의 유연성 면에서도 일반 학생비자보다는 나에게 훨씬 더 유리한 비자임은 틀림없었다.
대기업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비자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는 않은 여정이었다. 준비해야 할 서류 자체가 상당히 많았고, 일부 서류는 모두 영어 번역 후 공증절차를 거쳐야 했다. 퇴근 후에는 유학원에 가서 다양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준비해야만 했고, 수십여 가지 질문들과 그 답변들을 모두 외워야만 했다. 대략적인 스토리를 파악하고 내 영어실력을 통해 즉흥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인터뷰 현장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거의 툭 치면 쏟아내듯이 대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떨어진 암기력 하에서 쉽지 않았다. 모의 인터뷰에서 계속 버벅 거렸고, 원장에게 힐난을 듣기도 했다.
"아버님.. 이렇게 준비하시다가는.. 떨어지십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던 어느 날, 퇴근 후 방문한 유학원 사무실에서 만난 원장님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챌린지하고, 자신감 있게 끌고 오던 그 원장님의 모습은
어디 간데없었고, 이어서 청천벽력 같은 그의 한마디가 있었다.
"아버님.. 정말 죄송한데.. 우리 다시 그냥 학생비자로 준비할까 봐요"
"네?? 이제 와서요??"
(다음 편에서 계속)
*표지설명: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버논힐즈 센트럴파크에 있는 낚시 스팟. 아이와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잘 조성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