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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Jul 24. 2022

나의 해방 일지 #6

#6 커넥터(Connector)  같았던 삶.  

나의 MBTI는 'ENFJ'(일명 엔프제)이다. 한국에는 전체 인구의 2% 미만의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격유형 안내해주는 '16 Personalities' 사이트에서는 '선도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MBTI가 크게 유행하기 전부터 회사 교육 등을 통해 두어 번 해본 적이 있는데, 계속 이 타입이 나왔으며, 같이 테스트 본 100여 명 중에 거의 내가 유일하곤 했다.(2% 이론은 대충 맞는 듯) 최근에 윤 대통령의 MBTI가 이 유형이라며 소개하는 기사도 봤는데(이런 것도 기사냐는 악플도 많았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도 이 유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대략적으로 '선'을 추구하며,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타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돌이켜 보면 '갈등'을 극히 싫어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내 성향을 돌이켜 보면, 그럭저럭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삶이 일종의 커넥터(Connector)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갈등하는 어느 집단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도우는 역할을 도맡았던 것 같다. 물론 방송이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선택한 전공이긴 했지만, 대학에서 전공한 것도 '커뮤니케이션(신문방송학)'이었다. 특정한 기술이 없는 문과생들이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스킬'(일명 말발, 글빨)로 밥벌이를 하고 살게 되지만, PD라는 직업 특성상 끊임없이 소통하고, 서로 다른 집단과 조직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여러 부서(상품 협력사, 머천다이저, 방송 기술 스텝, 마케팅  등) 사이에서 전체적인 조율을 해야 했으며(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지만, 내 직업은 홈쇼핑 PD였다), 때로는 프로젝트가 물 흐르듯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마사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멕시코 주재원 시절 창립3주년 기념 특집 방송 준비중]



해외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해외 주재원이 되려고 무진장 노력하기도 했다. 회사 안팎으로 몸값이 가장 높았던(일 많이 하고, 젊고,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으로 부려먹기 쉬운 이라고 다시 쓴다) 높았을 때에도 경쟁사 스카우트에 응하지 않고, 선배들이 모두 말리던 해외사업 쪽으로 손들고 갔다. 해외 주재원의 가장 큰 업무 중의 하나는 본사와 현지 법인 간의 일종의 커넥터 역할이었다. 본사의 전략과 방향을 현지 직원들과 현지 Joint Venture사에 적절히 지나치지 않게 잘 전달해야 했다. 그런 역할이 하고 싶어서 자청했던 일이었지만, 때로는 현지 사정을 너무나도 몰라주는 본사와 본사 사정은 알리 없는 현지의 큰 간극 사이에서 힘들게 느낀 적이 많았다. 내가 있었던 멕시코는 전기가 110V 였고, 한국은 220V를 쓴다. 한국에서 가져간 다이슨 청소기를 쓰기 위해 엄청나게 무거운 '전기 변압기'를 사서 써야만 했다. 그 변압기(보통 트랜스라고 부른다)를 보면서 꼭 내 처지 같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나는 110V 전압이 가능한 나라에 와서 220V에 맞춰진 제품을 써야 하니 필요한 '변압기' 같은 사람이었다. 너무 오래 쓰면 변압기도 때로는 과열되기도 했다. 커넥터의 삶은 때로는 고달픈 것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 나도 여자 저차 한 사정으로 해외사업을 접고 한국 본사로 복귀해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미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 기존 사업 외에 신규 사업으로의 Transformation이 화두였다. 나는 다시 '커넥터'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서로 너무나도 다른 생리를 가진 두 사업, 조직을 연결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해야만 했다. 예상하듯이 중간에서 이 조직과 저 조직의 '다름'을 인정하고, 두 조직 사이의 고충을 들어야 했고, 성과도 내야 했는데, 결코 쉽지는 않은 역할이었다. 아.. 나의 '커넥터' 같은 인생은 언제나 끝이 나려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미국에 오게 되어서 '커넥터' 같은 삶을 잠깐이라도 중단하게 될 수 있을까? 이제 거의 한 달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자신을 반추해보면 일단은 그런 거 같다. 양쪽의 입장을 다 고려해야 할 필요 없이 일단은 나 자신을 이 새로운 세상에 맞춰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커넥터라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220v에서 110v로 바꿔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에서의 이동거리는 잠깐 마트 한번 가더라도 그 거리가 상당한 편이라 운전을 자주 하게 되는데, 한적한 숲길을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문득문득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거지?'라고 새삼 깨닫게 되고, 이 모든 환경에 갑작스럽게 낯섦을 느끼곤 한다. 와이프도 나랑 똑같은 느낌이 든다며 차 안에서 얘길 하곤 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양쪽 어깨에 무거웠던 그 '커넥터'로서의 짐을 잠시 나려놓고, 오로시 내 자신에만 집중하고 싶다.


(다음 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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