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잊혀 진다는 것
미국에 도착하여 새롭게 폰을 구매하였다. 아이폰끼리는 데이터 복사가 쉽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카카오톡도 그대로 옮겨져 왔다. 아무런 문제 없이 기존 카톡을 잘 쓰고 있었는데, 이틀째 아침에 갑자기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었고, 다시 앱을 열자, '해외에서 로그인 시도가 의심되어 차단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간단히 한국폰으로 문자인증을 하였는데, 문제는 이메일로 해야 하는 2차 인증이었다. 하필이면 그 계정을 연결해둔 이메일이 'hotmail'이었고, 수년째 로그인도 하지 않았고, 이미 msn과 통합되면서 서비스도 사라진 터라 복구의 길은 요원하기만 했다. 카카오톡 서비스 센터에 여러 번 메일도 보내고 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무조건 메일 인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내가 갖고 있던 약 2천여 명의 카카오톡 친구들(다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연결이 되었을까? 하면서도)의 정보, 기존에 있던 채팅 내역 등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간단히 문자 인증으로 다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계정은 영영히 '영구 휴면' 상태로 잠겨버릴지도 모른다. 처음 며칠은 매우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누가 나에게 연락하고 싶은데 연락이 안 닿으면 어쩌지? 혹은 내가 미국 온다고 연락을 끊고 잠수 탔다고 생각하려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다가, 다소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사실 두 번의 주재원 생활을 거치며, 인간관계가 자연스레 정리되는 경험을 진작에 봤다. 해외로 나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잊히게 되며, 내가 진짜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만 남게 된다. 페이스북 같은 SNS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가 생긴 후에는 해외에 있어도 언제든지 소식을 전하거나, 연락을 하기 쉬워졌지만, 막상 물리적, 시간적(특히나 미주대륙처럼 낮밤이 바뀌거나 하면) 거리감으로 인해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소식이 뜸하게 된다. 이번에 카카오톡 '불통' 사건을 겪으면서 반강제적으로 기존에 있던 카카오톡 연락처 상당 수가 '유실'되었다. 물론 다행히 주재원 시절부터 쓰던 부계정이 있어서 카카오톡에 기존 주요 지인들은 다시 복구되었지만, 주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던 2천여 '지인'들은 이번을 통해 강제 연락두절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카카오톡을 열어도 아무런 메시지가 오지 않는 것은 이제 어느덧 익숙해졌다. 사실 이제 한국에서 크게 연락 올 일도 없게 된 것이다. 불과 두 달여 전만 해도 수십여 개의 단체 카톡 방이 있었고, 다양한 지인 그룹, 회사 업무, 프로젝트 등으로 엮여 있는 방에서 수십여 개의 빨간딱지가 떠 있곤 했는데(참고로 빨간딱지 그대로 못 두는 성격이라 빨리 다 읽어서 없애야 하는 강박이 있다.) 며칠째 카카오톡이 없는 지금의 일상이 이제야 적응이 좀 돼가는 중이다. 그래도 이따금씩 '이러다가 나란 존재가 한국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잊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지인들의 단톡방에서도 항상 여러 대화들이 오간 뒤에 나는 항상 '뒷북'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단톡방이 그러하듯 바로바로 실시간 티키타카가 없으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이니까.
해외 생활의 또 하나의 단점인 '잊혀진다'는 것으로부터 초연해지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40여 년을 넘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왔는데, 어찌 쉬울 수 있을까. 이제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지인'을 만들어서 주소록을 채워나가야겠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이 들어서 진짜 마음 터놓는 '친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거 같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렇다. 만나자마자 말트고, 우리 친구 하자는 뭔가 30대 초반 이후에는 잘 없었던 거 같다. 잊혀지는 외로움을 상쇄하려면 다시 그 시절의 마인드로 돌아가야 하나 싶다.
(다음 회에 계속)
*표지설명 : 요즘 하늘은 마치 합성하고 포토샵을 거친 그래픽 같다. 구름이 낮고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넋을 놓고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