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골프 이야기
나의 골프 역사는 그야말로 띄엄띄엄 배우고 뭔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시작만 했던 그 자체였다. 그래서 채를 잡은 지는 3년이 되어가는데 실력은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필리핀 주재원 시절, 단 둘만 있던 법인에서 중년의 남자 둘이 유일하게 같이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 법은 가끔 소주 한잔 하거나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문제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18홀 라운딩을 나가곤 했다는 점이다. 아직 스윙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18홀을 돌다 보니 다녀오면 여기저기 쑤시기도 했고, 스코어도 엉망이었다. 필리핀 골프는 무더운 날씨 특성상 1인 1 카트이고, 공에서 공으로 카트를 타고 가며, 그것도 1인 1 캐디가 거리에 따라서 내 채를 다 건네주고, 퍼팅할 때 길도 봐준다. 그야말로 황제골프가 따로 없지만,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덕에 온몸은 땀으로 젖는다.
[필리핀에서 골프치던 시절]
주말마다 가족과 현지 한국인 선생님을 찾아서 레슨을 받았다. 주중에는 가능할 때는 같이 일하던 법인장분과 근처 군인 연습장을 방문하곤 했다. 놀라운 점은 (나도 처음엔 안 믿었는데..) 드라이빙 레인지 하나하나 마다 실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서 공을 놔준다. 드라이버를 치고 싶으면 모래로 작은 성을 쌓아서 드라이버 높이를 맞춰준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라 내가 휘두르는 채에 내 뒤에 있는 현지인이 맞진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고, 뭔가 '비인간적'인 느낌마저 받았다. 자동으로 공이 돌아가는 기계를 설치하는 것보다 인건비가 더 싸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한국에 가서 이 얘기를 하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년 초에 코로나가 심해져서 이런 레슨마저 중단되고 말았다. 골프에 겨우 정을 붙여가고 있는 시점에 다시 강제 이별하게 되었다. 실제로 가족은 20년 3월 강제 이별하게 된다. (주재원만 남기고 가족들은 한국으로 철수) 나의 골프 실력은 다시 제자리걸음이 되었고, 코로나 시국에 간간히 필드에 나가긴 했지만, 연습 없는 라운딩은 계속 같은 수준으로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대한민국은 갑자기 골프 대 열풍이었다. 주로 중년 남녀의 스포츠로만 여겨졌던 골프에 세대를 불문하고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나도 이래저래 분위기에 휩쓸려 집 앞 실내 골프장과 레슨을 거금을 들여 등록했는데, 중간에 허리가 나가면서 절반도 못 가게 된다. 아.. 나의 골프 역사는 왜 이런 것일까. 그래도 레슨을 좀 받으면서 기존보다는 조금씩 잡혀가고 있었(다고 믿었는데)는데, 다시 강제 중단되었다. 한국에서의 '필드 나가는 것'은 이래저래 약 30만 원 수준의 인당 비용이 드는 스포츠이다. 월급쟁이가 하루에 30만 원의 비용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인 것이다. 특히나 주중에는 일한다고, 약속 있다는 핑계로 집에 늦게 가는데 주말까지 하루를 온전히 집 밖에 나가 있는 것은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다. 그 결과 나의 한국에서의 라운딩 역사는 미국행이 결정되고 나서 대학 친구들과 한 번, 회사 선배분들과 한번 총 두 번이 끝이었다.
[사진은 제법 진지하지만, 대학친구들과 갔던 명랑골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미국은 골프 환경은 거의 천국 수준이었다. 동네마다 좋은 잔디의 골프장들이 즐비하고,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코스가 아니라면 라운딩 비용이 9홀에 25불, 18홀에 50불, 500불에 연간 무제한이다. 한국에서 라운딩 2번 나갈 돈이면, 이론상으로는 매일매일 쓰러질 때까지 라운딩을 돌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는 전동카트 쓰는 사람이 드물다. 그들에게는 골프는 걷는 스포츠이기도 해서, 각자가 손수레(전문 샵에 가면 꽤 가볍고 튼튼한 카트를 쉽게 구할 수 있다.)를 끌고 걷는다. 그래서 실제로 9홀만 돌아도 꽤나 운동효과가 있다. 잔디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체감상으로는 한국의 회원제 필드가 여기 9홀 수준이 된다.
[미국 골프장은 잔디도 잔디지만, 낮은 구름이 있는 하늘이 장관이다]
최근에 가족과 함께 레슨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우리 셋이 라운딩에 나가도 재밌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점수는 상관없다. 그저 공이 앞으로 나가게끔 하고, 많이 걸으면서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게 목표다. 그동안 자주 끊어졌던 내 골프 인생이 이제는 제발 제대로 꽃 피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