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국에서 운전하기 단상
흔히들 알려져 있듯이 미국에서 운전하기는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쉬운 편이다. 도로는 넓고(한국의 약 1.3배 정도 느낌이다) 뉴욕, LA 같은 도심지를 제외하곤 정체도 많이 없는 편이며, 어디를 가더라도 주차공간도 많고 주차공간 또한 널찍해서, 한국에서 흔히들 경험하는 문콕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 한 편이다. 물론 미국에도 가끔 난폭한 운전자들도 있긴 하지만(고속도로 칼치기 라던지, 뒤에서 경적을 울린다던지 하는..) 전반적으로는 다들 교통 법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준수하는 편이다. 특히 급 커브길 같은 경우는 많이 없어서 초보 운전자들에게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도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크고, 부드러운 승차감에 직진성이 좋은 큰 출력의 차량을 선호한다. 반면, 길이 좁고 구불구불한 유럽의 경우는 소형차와 핸들링이 좋은 차들이 꾸준한 인기였다. 일본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가 미국에서는 수십 년간 승승장구하지만, 유럽에서는 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난다.
[서버브 도로는 대부분 숲과 낮은 층 건물들의 연속이다]
내가 운전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은 그 어디보다도 운전하기 힘든 나라였지 싶다. 제대 후 군대 친구 만나러 부산에 갔다. 검은색 '대우 로얄 프린스'를 타고 나타난 그 친구는 부산역에서 나를 픽업해서 집에 가는 길에 누구와 잠시 시비가 붙었는지, 그 차 앞으로 가서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거 여기에서는 흔한 일이다"
참 터프했던 우리나라였다. 2010년대에도 길거리가 터프하긴 했다. 사람들은 양보라는 걸 모르는듯했고, 누구에게 양보라도 해주면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늦거나, 급하게 껴들거나 하면 뒤에서 날아오는 클락션 소리와 쌍라이트 빔은 다반사였다. 물론 옆으로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는 경우도 많다.
2020년에 한국으로 복귀하고 잠깐 놀랐던 점은 우리나라 운전 문화가 체감할 정도 좋아졌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비상등을 통해 '껴들어서 미안해요~'라는 표현도 할 줄 알게 되었고, 거리에서 종종 양보하는 사람들도 마주치게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법규들이 강화되어서 그런 점들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매너 수준이 올라갔을 것이고, 내가 잠시 떠나 있었던 3년여간의 공백으로 인해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여러모로 나라의 격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운전하면서 가장 달랐던 점은, '좌회전'이었다. 교차로에서 '신호시에만 좌회전' 이란 표시가 없으면 대부분 전방 신호 파란불일 때 교차로 중앙까지 나와있다가 반대편 차량이 없을 때 쏜살같이 좌회전이 가능하다. 넋 놓고 있다가 도로 중앙까지 안나가 있으면 뒷 차가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내가 노란불에 좌회전해서 갈 수 있는 뒤차의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놀라운 점은 대로변에서도 중앙선을 침범해서 반대쪽 차선으로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도로 사이에 타원형 공간이 있어서 일단 거기에 들어와 있다가 차가 없으면 휙 하고 차선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것 또한 '중앙선 침범'이 중대과실로 여겨지는 한국 운전자들에겐 놀라운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소방차'나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갈 때다. 정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듯 쫘악 양쪽으로 붙으며 멈추는 차량 행렬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그냥 살짝 길만 비켜줬는데, 완전히 도로 쪽으로 붙어서 서야 한다고 한다. 특히 좁은 길에서는 반대편 쪽에서 지나와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중앙선을 침범해서 지나갈 수도 있다고 해서란다. 가끔 한국에서는 소방차나 앰뷸런스가 지나가지 못해서 빠른 화재 조치를 못 하거나 긴급환자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뉴스가 들리곤 하는데, 미국에서는 그 무엇보다 이런 규범은 잘 지켜지는 것 같다. 특히 노란 스쿨버스가 'STOP'사인을 펼치고 서있으면, 거의 앰뷸런스 급으로 기다려줘야 하는 것도 '국룰'이다.
자주 마주치는 철도 교차로도 새롭긴 마찬가지이다. 광활한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류 수송기 차가 매우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한번 제대로 걸리면 거의 5분 이상을 넋 놓고 서있어야 한다. 저렇게 길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화물칸들이 연결되어 지나가는데 웬만하면 우회해서 돌아갈 수도 없다. (거의 몇 블록을 돌고 돌아가지 않으면) 화물칸 마다마다에는 화려한 그라피티들이 수 놓여 있는데, 이제는 화물기차를 만나면 그냥 그 그라피티를 감상하며 "이건 좀 멋있는걸, 음.. 저건 좀 별로야 등"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그나저나 그 많은 그라피티는 누가, 언제 그리는 걸까?
[화려한 그라피티를 자랑하는 미국 물류 수송 열차]
한 가지 우스운 점은, 미국은 전방, 1열 쪽 유리 선팅이 금지되어 있어서, 운전자 서로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볼 수 있다. (범죄 방지 이슈라고 알고 있는데,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를 모르겠다.) 선팅이 안되어 있어서 안 좋은 점은, 운전 중에 왼쪽 팔이 엄청 타기도 하고, 가끔 앞 유리 쪽에서 태양이 너무 세게 들어와 앞을 잘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서로 '너무나도 잘 보인다'는 점이다. 차에서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는 사람, 엄청나게 무엇을 먹는 사람, 심지어 코를 후비는 모습들이 서로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미국에 여행 왔을 때에는 이게 너무나도 문화충격이었다. 한국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선팅도 많고, 앞, 옆을 지나가는 운전자 얼굴이 잘 안 보이는 반면, 이건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잘 보였으니 말이다.
차 안은 나름 프라이빗한 공간 중의 하나인데, 요즘엔 차에서 가급적 아무것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코 부분..
[미주리 주로 무려 왕복 13시간 장거리 운전경험, 길의 대부분은 이런 초원의 연속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