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이별
헤어지기 하루 전
상담을 했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저번 주 내도록 무기력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사람을 아직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이 앞으로 나 없이 혼자 살아갈 인생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행복보단 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앞으로 더 나아가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 사람의 삶에서 나는 더 이상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사람과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현실적인 부분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아껴주고 포용해줄 만큼의 환경과 그릇이 되지 않는다. 이게 제일 가슴이 아프다.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유가 슬프다. 나도 정말 미련이 많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니 그것도 맞다. 그게 맞는 거다.
서로와 서로가 노력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 어떤 관계든 한 사람만 맞춘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근데 그런 과정이 되려면 서로에게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하고 상대방을 사랑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이나 있어선 안된다. 솔직하고 감정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린 너무나도 상처받아있다. 한쪽이든 둘다든, 이런 관계는 대화로써 풀 수가 없다. 자존심도 중요한데, 그 사람과 '대화'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면 그 관계도 이어나가지 못한다.
정말 서로를 어떻게 믿고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계속 또 계속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도 그 사람이 필요했고 그 사람도 내가 필요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지만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으니 변하지 않았겠지 나와 대화하지 않았겠지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나를 혼자 두었겠지.
헤어지고 하루 후
마음이 공허하다. 어제 많이 운 탓이겠지, 눈이 퉁퉁 부어서 눈을 감고 뜨기가 느껴진다. 자연스럽지 않고 눈이 정말 시리다. 그래도 어제 몇 시간 운 덕분에 마음은 텅 비어있다. 아침이라서 다행이다
감정이 우선이 되지 않는 시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감정은 잠잠한 상태이다. 아님 탈진한 상태일 수도 있고, 무엇인가 먹고 싶거나 하진 않는다. 그냥 감정이 잠잠하고 가라앉은 느낌이다. 정리가 되고 있는 상태겠지? 슬퍼하고 아파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니까, 내가 미워하고 힘들어했던 게 부질이 있었나 생각했다.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아꼈던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 정말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걸 이해하게 되었다. 나와 있는 미래는 그 사람이 정말 불행해진다. 헤어지고 자책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책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더라면 …….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이 인연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렸다. 이렇게 놀랍도록 잠잠하고 이성적으로 명확한 상태는 오랜만이다. 어떤 욕구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기계처럼 감정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어딘가 아파 보이기도 하고 잠잠해 보이기도 하고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헤어진 당일 어제의 기억
그 사람과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도저히 자전거를 타기엔 내가 위험할 것 같다 생각했다. 뭐, 차에 뛰어들거나 이런 건 아닌데 감정적으로 멍한 상태였기에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걸었다. 걷다 보니 왠지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어서 아, 나 지금 감정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자전거를 못 탈 정도는 아니구나 생각이 들어 자전거를 탔다.
집까지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니까, 오늘 집에 책이 오니까 도서관에 가지 말까, 내일 체력적으로 여유로울 때 도서관에 갈까. 오자마자 집안일을 하기로 계획을 짰었는데 하고 싶지 않고 그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생각해서 자전거를 이끌고 잠시 집으로 와서 반납할 책을 들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누비자는 복불복이 있는데, 이 자전거는 다행히도 잘 달렸다. 우리 집까지 가는 길은 평평했다. 근데 집을 들렸다가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평평하지 않았다. 변속을 바꾸는 순간, 오르막길 , 내리막길마다 덜컹 댔다. 체인이 잘 걸어지지 않은 것이다.
오르막길에서 계속해서 삐그덕 거리는 자전거 때문에 차가 올 때, 멈춰야 할 때, 내려갈 때, 계속해서 불안해하면서 자전거를 타야 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예전에는 땅도 정비가 잘 되지 않았던 길이었다. 몇 개월 전이니 바뀌었겠지? 생각했는데 다듬어지고 반듯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울퉁불퉁 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는데 전봇대를 정비하는 사람들이나 도로로 나오는 차들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 자전거가 말썽이라니…….
이 자전거는 도서관에 갈 때만 이용하기로 하고 목적지 근처에 새로운 누비자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햇빛이 너무 강하다 보니 눈이 너무 시렸다. 자꾸 눈이 따가웠다. 선크림 때문일 수도, 땡볕에 통풍이 잘 되지만 까만 옷에 따끔거리는 눈에 잘 가다가 한번씩 삐그덕 거리는 자전거, 새롭게 바닥을 정비했지만 여전히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정비하고 사업체들이 있어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해야 하는 길이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더욱 힘들게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나면 꼭 누비자를 바꾸리라 생각했다.
더위를 조금 먹은 것인지 누비자를 대충 끼워 넣고, 책을 반납했다. 그리고 다시 누비자를 확인했는데 내가 탔던 누비자가 그 누비자 같아서 내가 몇 번에 넣었는지 순간적으로 까먹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넣지 않았을 것 같은 자리에서 다른 누비자를 선택했고 왔던 길이 아닌 잘 닦여진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누비자를 뽑았다. 다행히 이상하진 않았다.
그리고 잘 닦여진 길로 가는데 철없어 보이는, 딱 봐도 반에서 가오를 잡을 것 같은 남자 무리들이 좁은 길에 종소리를 울렸음에도 비켜주지 않았다. 무리들에 막혀 넘어질 뻔했다.
나랑 15살 차이는 족히 나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지금도 열이 받는데
" 누비자네 " 하면서 조롱하였다. 내가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다시 돌아봐서 그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순간 112를 부를까 생각했다. 이 철없는 아이들은 우연히 지나치는 나 조차도 조롱하는데 자신의 반에서는 자신의 가오를 위해 힘없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힐까 싶어서 그냥 진짜 무서움을 보여줄까. 생각했다. 아직도 무서움을 보여주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만약에 그 아이들과 같이 행동했던 적이 있다면 그 아이들을 이해하며 넘어가려고 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쌩쌩 밟았다.
울퉁불퉁한 길이 아닌 잘 닦여 있는 길이었기에 오르막길도 흔들리지 않았고 자전거 또한 안정적으로 날 받쳐주었다. 도서관을 갔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집 근처로 도착을 했다. 집 근처로 왔더니 예전에 일하던 카페가 보였고 나를 정말 잘 챙겨주셨던 사장님이 보여서 사장님이 좋아하는 빵을 샀고 내가 먹어보고 싶었던 멜론빵을 먹으며 집으로 올라갔다.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공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영상을 보아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마음껏 먹는 영상을 보아도 뭔가 공허했다.
이런 상태로 하루의 계획을 진행할 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직면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
유튜브에 노래를 쳤는데 밝은 노래를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싫어하는 발라드 종류가 눈에 들어왔다.
'이별하기 좋은 노래' 끌리는 것으로 노래를 틀었다.
계속 눈물이 났다. 정말 계속 눈물이 났다.
이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신께 기도했다.
예전의 생각들도 났다. 집에 남아있던 한 장의 사진, 그 사람과의 추억 속에 있었던 이건 그 사람과는 무관할 거라고 생각했던 토끼 인형, 그게 내 미련의 값이었나 보다.
그 마저도 없었더라면…….
그 사람이 남겨놓은 짐이 더 있었다면 …….
갖가지를 생각하며 그 추억 속에 잠겨서 아마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억지로 라도 뱉어내려는 듯이 울음을 계속 토해냈다. 내 6년간의 추억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없어지다니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누비자를 탔을 때부터
아니 헤어졌을 때 이후 모든 순간에 그 사람이 있었다.
이 자전거가 나와 그 사람과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내가 그 사람과의 이별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젊었던 어느 날 우린 만났고, 어떤 길도 같이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험난한 길도, 어떤 상황이 와도 함께 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노력하지 않은 관계는 삐그덕 거릴 수밖에 없잖아
그 사람은 나와 함께 길을 나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끝나는 그 순간에도 내가 놓아야 했다.
앞으로의 길은 나 혼자 헤쳐나가야겠지,
어떤 조롱이 와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
사실 나 그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했고, 헤어진 그 순간에도, 지금도 사랑했다.
그 사람과 나를 위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우린 6년간의 길에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