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의 방식

죽음은 마치 환자가 병에서 회복되는 것과 같다

by 디디온

33세 사진작가와 88세 영화감독 아네스 바르다가 친구가 되어 만든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마지막 부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네스 바르다가 친구인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 집에 찾아갔는데 문 앞에 메모가 붙어 있다. 몸이 안 좋아 아무도 만날 수 없으니 돌아가라는 내용. 아쉽고 쓸쓸하게 돌아선 바르다는 젊은 시절 고다르와 같이 활동했던 시절을 추억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 얼마 되지 않아 장 뤽 고다르가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91년간의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고다르가 안락사를 택한 이유나 그 과정에 대한 기사를 읽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 4년 전에는 호주의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104세의 나이로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했다. 102세까지 건강하게 연구활동을 하던 데이비드 구달은 불치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건강이 악화되자, 베토벤 교향곡 9번 마지막 부분을 들으며 이 세상을 마감하는 안락사를 택했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노인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도구로 내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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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다는군요. ‘그, 그녀(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아요.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부모, 자식, 형제 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은 아니에요.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어려운 거죠.

_《죽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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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시절 대학연합서클에서 알았던 친구가 7여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파주 장례식장에 갔다가 벽제 화장터까지 가서 화장하는 것까지 함께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홍대에서 가진 송년회에서의 모습이 생각났다. 이쁜 얼굴인데 이쁘게 화장을 하고 멋도 부린 옷차림에 담배를 피우던 모습. 그녀가 나를 보고 싶다고 꼭 송년회에 오게 해달하고 부탁했다는 말을 후에 듣고서 왜 나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지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끝내 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하게 되었다.


화기 앞에서 관이 대기하는 동안 바로 옆 화기에서 관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자 찢어질 듯 터져 나오던 울음소리와 그 울음소리를 가리기 위해 더 커지던 찬송가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친구 관이 900도가 넘는 화기로 들어가 뼈와 살을 모두 태우고 한 줌 재가 되는 과정을 밟는 동안 우리들은 식당에서 화장 진행 상황을 모니터로 보면서 곰탕을 먹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인의 부고소식도 여러 번 들었다. 암 투병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적멸이 목전에 온 것인가. 환갑이 지나면 한쪽 발을 관에 집어넣고 사는 기분이라고 누가 말하던 게 기억나는데 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이제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택한 한국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스위스 안락사 동행에 대한 체험을 책으로 펴냈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 일이다. 당장 책을 구해 읽어보았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는 여러 면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이 있지만, 돈을 지불하여 스스로 안락사라는 죽음의 방식을 택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그것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안락사에 관한 경험을 이렇듯 생생하게 들려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문제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듯 수많은 감정들이 통과하였다. 슬픔과 두려움과 연민과 공포와 안도. 스위스 안락사에 그렇게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라던 후배의 농담 아닌 농담은 그것이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안락사를 택하는 사람과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감당해야 했던 심적 고통이 느껴졌다. 고인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까지의 오랜 번민과 두려움과 고통이 전해져 와 읽는 내내 감정이 요동쳤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을 육체적 고통과 심적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 이런 무서운 책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 미리 알 수 없고 준비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용서와 화해를 이루며 커다란 성장을 불러오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진실해진다’고 한다. 나의 죽음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죽음이 나의 삶의 편안한 완성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자신의 삶을 말하던 사람,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동행한 지인들의 선물을 챙기고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따뜻하고 섬세했던 사람, 무수한 고통을 통과하여 자신 몫의 삶을 살아내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 삶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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