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자매, 공심채와 궁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어보는 tvn 예능프로그램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 태국의 한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로 ‘카오랏깽’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카오랏깽’에서 ‘카오’는 ‘밥’을 의미하고 ‘깽’은 ‘국물 있는 음식’이란 의미로, 카오랏깽은 우리나라 덮밥과 비슷한 음식이다. 프로그램 진행자 백종원은 코코넛과 카레를 넣고 졸인 돼지고기, 태국식 바질에 볶은 돼지고기, 닭고기 마늘조림 등을 밥 위에 얹은 카오랏깽을 먹는다. 그 카오랏깽에 들어가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공심채 볶음’이다.
태국어로는 ‘팍붕’, 영어로는 ‘모닝 글로리’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空(빌 공)’을 사용하여 ‘공심채’라고 부른다. ‘空(빌 공)’이란 말이 들어간 이유는 공심채 줄기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공심채 줄기는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신기하다. 그런데 이 ‘구멍’이 신기한 요술을 부린다. 속이 비어 있어 공심채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주고 비인 곳에 양념이 배어들어 맛을 더하는 것이다.
미나리의 강한 향을 좋아하지 않는데 미나리와 비슷하게 생긴 공심채의 향은 은은하고 맛도 드세지 않아 상냥한 여자처럼 느껴진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자라는 공심채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많이 먹는데, 여름과 궁합이 잘 맞는 매력적인 야채이다.
공심채보다 더 예쁜 연둣빛의 ‘궁채’를 처음 맛본 것은 동네 맛집 ‘어뜰’에서였다. 생선전문요리점인 어뜰에서는 힘 좋은 주방장이 직접 만든 밑반찬들이 나오는데, 이 밑반찬 가운데 하나가 ‘궁채 볶음’이었다. 처음 먹어본 나물의 맛과 식감을 신기해하자 주인장이 나물 이름이 궁채라는 것과 궁채가 상추 줄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줄기상추’로도 불리는 궁채는 황제에게 진상했던 귀한 것이라고 하는데 들깨로 무친 궁채는 씹을 때 뽀드득하는 소리가 맛깔나게 들린다. 바로 옆동에 사는 언니는 어뜰에서 궁채를 처음 맛보고는 인터넷으로 궁채를 주문해 직접 만든 궁채나물을 한 접시 갖다주었다. 올리브유처럼 압착해 만든 생들기름만으로 무친 궁채는 음식점에서 맛본 들깨 궁채와는 또 다른 맛의 색을 선사하였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나머지 지난 일들이 모두 무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루하루 숨 쉬고 먹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 싱싱하게 푸른 공심채와 궁채의 맛은 더위로 잃어버렸던 생기를 맛으로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