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

by 디디온

코로나가 한창이던 작년 봄, 일산 대곡역 근처 대장천 생태습지에서 몇몇 선배를 만났다. 오랜만에 서로 얼굴도 볼 겸 함께 걷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날 대장천 생태습지에서 노란 애기똥풀꽃, 붓꽃, 꽃다지, 갓꽃, 유채꽃, 배추꽃 등을 보았다. 모든 꽃은 저마다 다 애틋하게 아름다웠다.


흥미로웠던 건 짠돌이로 소문난 선배가 ‘거금’을 투자해 산 망원경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만보를 걷는 어려운 숙제를 매일 꼬박꼬박 실천하는 분이신데, 그렇게 매일 걷다 보니 주변의 풀이며 꽃이며 오리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관심을 가지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절대로 허튼 일에는 돈을 쓰지 않는 분이 ‘거금’을 투자하신 것이다. 그 망원경으로 그날 대장천 물에서 노니는 ‘오리’ 들을 보았더니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깜짝 놀랐다. 너무 생생하고 가까이 있는 모습에 ‘오리’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생태습지에서 풀이나 꽃이나 오리들로 눈요기를 한 뒤 말이 많은 남자 둘, 말이 잘 통하는 여자 셋이 함께 걸었다. 대곡역을 지나 대장천 하류까지 가서 대장천과 도촌천이 만나는 신평저수지까지 꽤 먼 길을 걸었다. 먼 길이었지만 말이 잘 통하는 여자 선배들과 걷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집구석 이야기부터, 이웃과 살아가는 이야기, 책과 영화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잔잔한 강물처럼 때론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재미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걷자 배가 출출해졌다.


길을 걷던 곳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올갱이 해장국과 만두를 막걸리 반주와 함께 먹었다. 즐거웠던 걷기 뒤에 먹는 음식은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한 선배가 최근 인세를 받았는데 그것으로 밥을 사겠다고 하며 계산을 했다. 식당을 나와 걸으며 어떤 책이 우리에게 밥을 준 것인지 물었다. 선배가 쓴《비밀》이란 그림책이 중국어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중국에서 《비밀》이 50만 부가 팔려 최근 그에 대한 인세를 받았다고 했다. 그림책《비밀》이 어린이 성폭력에 관해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 맥주집에서 맥주를 한잔 더 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그렇게 맛있는 저녁을 선사한 그림책에 대해 한참 잊고 있다가 얼마 전 어린이책도서관에서 그 책을 우연히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집어 들고 읽고서 이 그림책이 예사롭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책으로 다루기 힘들 것 같은 아동 성폭력이란 주제를 이렇게 신선하게 다룰 수 있을까, 하며 놀랐다.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있잖아, 이건 비밀인데” 하면서. 이렇게 다감한 글로 그렇게 무거운 주제를 풀어가다니, 참신했다.


아동 성폭력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비밀》은 《백만 번 산 고양이》《넉점반》에 이어 내가 읽은 세 번째 그림책이다. “《백만 번 산 고양이》를 백만 번 읽으면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다”라는 일본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어 “그림책《비밀》이 백만 번 읽힌다면 아동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밀 표지.jpg 어린이 성교육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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