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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너무나 인간적인 파르티잔의 인생결산서

by 디디온

대학 시절 전철에서 내려 학교 가는 길에는 조그마한 사회과학 서점이 둘 있었다. 지난겨울 황당한 계엄선포 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을 가결하는 의사봉을 두드린 분이 한때는 오른편에 있던 사회과학서점 주인장이었다.


그 시절 사회과학 서점에 가면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등 계간지 옆에 다소 과격해 보이는 표지가 눈에 띄는 노동해방문학이란 계간지가 있었다. 혁명의 기수처럼 깃발을 든 사람이 크게 클로즈업된 붉은 표지가 눈길을 끄는 노동해방문학에서 자주 보던 이름이 정지아였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왠지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여 한 번도 작가의 글을 읽지 않았다.


혁명을 하기 위해 총을 들고 지리산을 누렸던 전직 빨치산의 인생결산서를 유쾌하게 풀어내는《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내가 가진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빨치산 아버지 장례식장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이렇게 재미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소설의 재미와 따뜻함의 상당 부분은 ‘~안 할라요’ ‘잘 알그마요’ ‘~갑네’ 하는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에 기인하는데, 전라도 사투리가 이리 정겨운 말인 줄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빨치산은 순우리말이 아니다.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온 외국말이다. ‘유격대원’ 정도를 가리키는 빨치산이란 말에는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과는 상관없는 말이지만, 격동의 현대사를 통과하며 ‘빨치산’은 우리에게 무서운 ‘빨갱이’로 각인되어 있다.


빨치산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전직 빨치산은 더없이 인간적이다. 오지랖 넓게 남의 힘든 일들을 도와주고 아픈 마음을 알아봐준다. 십대에 빨치산이 되어 20여 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전직 빨치산은 “한 갑자를 살고도 턱없이 사람을 믿는 순진함”을 못 버린다. “총을 들고 백운산과 지리산을 누빈 역전의 용사라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을 만큼. 빨치산 전력에 덧붙여 선술집 하동댁의 엉덩이를 슬쩍 만지다 어린 딸에게 혼난 전력도 있다.


보증을 서주었는데 아무 말 한마디 없이 야반도주한 친척을 원망하기는커녕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이해해주며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사람. 평생 빨갱이란 낙인 아래 가난뱅이로 살아가면서도 전직 빨치산은 사람살이의 근본을 잊지 않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빨치산의 마지막 길에는 그가 평소 마음을 나누어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생 가난을 곁에 두고 살았지만 그는 한 번도 누구를 기망한 적이 없었다. 인생은 가시밭길이었지만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풍성하였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던 작가는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자신을 얽매었던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었을까. 죽어서야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빨치산 아버지는 이제 ‘빨치산’이란 그 무거운 굴레에서 해방된 것일까.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빨치산의 딸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글, 사람 사는 세상 냄새가 정겹게 들리고 겁나게 재미있는 소설을 다 읽으니 오래전 들었던 민중가요 ‘어머니’의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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