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진가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
마크 로스코를 알게 된 것은 황동규의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에 나오는 〈일곱 개의 단편斷片〉이라는 시를 통해서이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가리켜 문학평론가는 ‘지루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시인은 ‘속이 안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두고 두 고수가 주고받은 대화는 로스코의 작품을 이해한 것을 더없이 쉽고 위트 있게 표현하고 있다. 어려운 개념을 쓰지 않고도 작품의 핵심을 곧장 드러내는 것이다.
20대 시절 내 하우스메이트는 피아노 전공자였다. 그녀 방에는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는데 피아노가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람에, 하우스메이트는 늘 그랜드 피아노 밑에서 잠을 잤다. 클래식만 들으며 다른 음악은 살짝 하대하던 그녀는 클래식 시디 전집을 사서 들으라고 권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클래식 작곡가들의 주옥같은 명곡들만 선정한 클래식 시리즈 컬렉션을 추천하였다. 피아노 전공자의 권유도 있고, 왠지 클래식을 알아야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큰맘 먹고 피아노 전공자 방에 있는 것과 똑같은 클래식 시디 컬렉션을 샀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라는 큰 산을 오르기 위해 구입한 클래식 시디 전집은 너무나 지루하여 오히려 클래식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음악에 대한 교양은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그때 《심미안 수업》 같은 책이 있었다면, 그래서 아래와 같은 구절을 접할 수 있었다면 클래식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글 쓰는 사진가로 유명한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클래식 음악이 졸리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경우 클래식을 ‘필수 교양 지식’처럼 접하기 때문이다. ‘알아야 하는 것’ ‘외워야 하는 것’이 재미있기란 힘들다.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서 클래식 음악이 가진 해석의 스펙트럼을 알게 되면 그 안에서 펼쳐지는 변화와 기발한 시도의 다양성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개정판이 출간된 《심미안 수업》에는 예술 DNA를 키우기 위한 길잡이가 될 만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사진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아트워커로 활동하는 현재의 ‘윤광준’ 이 되기까지의 경험이 친절하게 담겨 있어, 예술에 대한 갈망은 있는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으면 좋을 이야기가 가득하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에 대한 이야기, 경북 영주 고택에서 펼쳐졌던 판소리와 비발디 사계와 소프라노 실비아 사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가 느꼈던 감정의 진폭이 고스란히 읽는 사람에게 다가왔다.
예술은 누가 가르쳐주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열망에서 출발하여 경험을 통해 감각을 쌓아가며 다가가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느끼는 것의 힘이 아는 것의 힘보다 강렬하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하다 보면 비로소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예술을 즐기게 되면 인생이 지루하지 않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그리고 남다른 사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주는 매력을 알고 나니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기이한 형태에서 자코메티를 떠올리고, 뒤틀린 색감에서 추상화를 상상하고, 안 들리던 음색이 들리니, 스스로가 그렇게까지 초라하지는 않았다. 예술이야말로 불행을 견디게 해주는 가장 좋은 보호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과 오디오에서 시작하여 건축, 음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아트워커로 활동하는 윤광준의 명품 인생이 《심미안 수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