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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May 20. 2023

당신과 나

피할 수 없는 부부관계의 과정에 대해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의 책은 오래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최근 그의 다른 책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를 집 근처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었다. 대출 창구에서 업무를 보던 분이 이 책의 바코드를 찍으며 “제목이 심상치 않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졌다.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이 적절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콧 펙의 책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스콧 펙 자신의 부부생활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에 대해 들여다보고 수많은 환자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한 의사도 자신의 ‘부부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과 그것에 대한 대응방식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도 사랑에 대한 환상, 환상이 깨지면서 찾아오는 상대에 대한 ‘실망 및 부정 그리고 불화’란 오랜 공식들을 피해나가지 못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

     

(《죽음과 죽어감》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가장 작은 집단인 부부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지내온 결혼 생활도 퀴블러 로스가 말했던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한다.     

 

릴리와 나의 결혼 생활을 보더라도 분명히 맞는 말이다. 결혼하고 처음 5년 동안 우리는 서로가 더 이상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부정하는 데에 급급했다. 이 부정이 무너지자 우리는 서로가 기대하는 영혼의 반려자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 싸움을 일삼았다. 말하자면 비난의 시간이었다. 끝없이 상대의 결점을 늘어놓으며 그것들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나는 몇 번이고 내 생각대로 릴리를 바꾸려 했고 그녀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나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던 우리는 이후 서로 부딪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경계와 규칙을 협의했다. 이 행동은 타협과 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그것을 하면 내가 이것을 할게.” 우리는 둘 다 이렇게 말했지만 이런 방법이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다.

      

결혼한 지 20년이 될 때쯤 우리는 결혼 생활에 심각한 우울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이 지속될 수 있을지, 정말 그래야 하는지조차도 확신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별것 아닌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이후 10년 동안 우울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차츰 릴리의 몇몇 결점들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결점 하나하나가 내가 매우 존경하고 신뢰했던 그녀의 장점들의 이면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저주하며 싫어한 내 결점들이 그녀에게는 없는 내 재능의 아주 자연스러운 부작용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꽤 잘 맞는 사이라는 것이 점차 분명해졌다. 한때 마찰과 분노의 원인이었던 것이 이제는 칭찬, 즉 적절한 상호의존에 대한 칭찬의 근거가 되었다. 결혼 30년이 될 무렵에는 우울했던 결혼 생활은 대체로 재미있어졌고 7년이 더 흐른 지금 우리는 안정적으로 은퇴의 삶을 누리고 있다.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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