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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May 25. 2023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금지가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제목의 이 소설은 저자 다이 시지에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다. 좋아하는 영화평론가의 글을 읽다 한 대목에서 이 소설이 언급되어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소설은 마오쩌둥 시대 문화대혁명의 쓰나미로 3년간 두메산골에서 사상 재교육을 받는 십대 소년 두 명과 그들이 사랑하는 바느질하는 처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정을 깊게 이입시키기에는 물리적 시간적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처음에는 생각하며 읽었지만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대단히 매력적인 소설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 대한 경의, 한 사람을 향한 진정어린 마음이 담긴 사랑,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과 유머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_ 갑자기 그 작은 책은 침입자처럼 나에게 욕망과 열정과 충동과 사랑에 눈을 뜨라고 말하면서, 그때까지 고지식한 벙어리에 지나지 않던 내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여기서 ‘그 작은 책’은 발자크 소설 ‘위르쉴 미루에’를 가리킨다)   

  

_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소설의 마지막 문장. 4개월간 남자친구인 뤄로부터 ‘발자크식 재교육’을 받은 뒤 자신이 살던 고향과 남자친구를 떠나는 바느질하는 처녀가 한 말에 대해)     


_ 의사의 말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물을 억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발자크 번역가를 향한 눈물이었다. 어쩌면 그 눈물은 한 지식인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경의, 가장 큰 감사의 표시가 아니었을까?(발자크 소설을 번역한 ‘푸 레이’라는 인물에 대해 의사가 ‘그 역시 네 부친처럼 인민의 적’이 되었다는 말을 한 후)     


_ 발자크는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지요. 작중인물들의 욕구, 욕망, ‘비열한 짓들’을 사실적으로 폭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발자크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날마다 보는 이웃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건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중국문학에서는 감정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저자의 말)     


“자전적인 이 소설이 때때로 고달픈 시절과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는 모순되게 즐겁고, 평온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것이 가장 놀랍다”라는 것은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고 나또한 그러했다.   

  

라틴어 성경을 소지하고 있다 발각되어 거리의 청소부로 내몰린 목사 이야기를 비롯하여 곳곳에 단선적이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던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차라리 쓴웃음만 나오는 현실이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아우슈비츠에서 프리모 레비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 로렌초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세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 다이 시지에

1954년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난 다이 시지에는 십대 시절 문화대혁명의 구호 아래 3년간 쓰촨성에서 ‘재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였다. 첫 장편소설《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로 큰 성공을 거두며 작가로 데뷔했고, ‘식물학자의 말’ 등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다이 시지에가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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