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커버스커, 「꽃송이가」
다른 사람들과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가끔 「꽃송이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대부분 밝고 경쾌한 봄 노래로 많이 듣던데, 나는 이 노래가 참 슬프게 들렸다. 뭐 하자고 그러면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한 적 없는 그 사람에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고,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행인 1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한 사람의 슬픈 짝사랑 서사가 가사에서 보였다.
서른을 앞두고 나는 이 노래를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어려웠’던 사람과 함께 차 안에서 들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슬픈 짝사랑 노래라고, 나는 이 노래 화자의 마음을 정말 잘 알 것 같다고, 그래서 참 슬픈 노래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이 노래를 같이 듣고 있는 너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는 것을 돌려 표현한 말이었다. 정말 노랫말처럼 그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은 그 사람 때문에 몽글몽글 했지만, 그걸 잘 드러내지 못했다. 드러내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 생각을 표현하면, 그렇게 밝게 빛나는 사람이 나와 엮여서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 이런 내 마음 좀 알아 달라고,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 달라고 떼쓰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래서 억지로 약속도 잡았고, 커피도 한 잔 하면서 그렇게 이 노래를 같이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 가사에 내 마음을 실어 살포시 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용기는 「꽃송이가」는 슬픈 노래라고, 내가 요즘 이 가사 같은 마음이라고, 딱 여기까지였다.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얼마나 폴짝거리고 살랑거리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거절의 말도 「꽃송이가」로 들었다. 결국 그 사람은 나에게 이 노래 가사가 그렇게 슬픈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친한 사람끼리 산책도 할 수 있고, 배드민턴도 칠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지 않냐고. 아, 그렇구나. 이게 거절이구나. 바로 깨달았다. 그렇지만 노래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답을 했다는 경험은 꽤 신선했다. 이것도 봄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