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워너비,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유튜브를 이리저리 보다가 싱어게인3 클립에 다다랐다. 거기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가사를 음미하게 되는 노래다. 목소리도, 음악도 가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드라마 ost이고, 《시카고 타자기》를 나는 보지 않았지만, 대강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타임 슬립물에 적절히 버무려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수정 님은 이런 절절한 사랑에 엄청난 설득력을 주는 인물 그 자체인 것 같다. (참고로 임수정 님 필모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이다. 마지막에 라디오에서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아마 당시 나에게 없던 당당함과 당돌함, 그리고 자기를 잘 돌본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가서에 정말 잘 들어가 있다. 그런데 가사와 가창, 음악 모두 과하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고 담백해서 듣는 사람의 감정을 더 증폭시킨다. 엄청난 큰일을 겪고 온 사람이 "사살은 별것 아니었어."라고 담담히 말할 때 듣는 사람들이 더 뜨악하는 것과 같은 이치.
노래를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직업병처럼 졸업이 떠올랐다. 누군가 교사는 항상 짝사랑하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했다. 맞는 말이다. 지독한 짝사랑의 직업이다. 물론 그 표현이 애정어린 말보다 채찍 같은 말이 더 많은 해도 있지만, 결국 나는 학생들을 보는데 거기에 호응하는 학생들은 소수이고, 나머지는 교사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그런 지독한 짝사랑에 참 어울리는 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블로그에 수업 이야기를 적다 보면 결국 학생들과의 이야기를 적을 수밖에 없다. 수업은 학생을 떠나서 숨 쉴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기록 하나하나가 사실 학생들은 거의 보지 못한다. 뭐, 우연히 고등학교 수행평가 검색하다가 볼지도 모르지만, 그 기록을 언젠가는 읽고 나의 얕은 생각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 와중에 가사를 한 번 더 읽어보니 교사가 학생들에게 졸업식날 불러주면 꽤 좋은 노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을 해도 졸업은 하겠지만, 그래도 졸업하고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나의 비겁한 마음과 욕심에 너희와의 관계를 조금 어긋나게 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비겁한 변명 뒤에서 나를 뒤에서 욕해도 내 행동이 너희에게 좋은 영향이었으면 좋겠소. 서툴었지만 그래도 다음 선생님들과 또 좋은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겠소. 그 기록을 이렇게 남기니 가끔 이런 사람도 있었다 기억해 주시오. 적고 보니 꽤 그럴듯한 서사이자 상황에 따른 해석인 것 같다. 문제는.... 이렇게 부를 수 없는 게 문제. 저런 목소리 나오는 성대 백화점에 안 파나?
두 번째는 내 사랑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저렇게 가슴 절절한, 나를 원망하고, 나랑 헤어진 것을 잘 된 일이라 여길 테지만, 나에게 사랑은 전부 그대인 사랑을 했었는지. 정말 사랑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런 절절한 사랑을 하는 나 자신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대학교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조금만 심장에 부정맥 같은 반응이 와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상대에게 무작정 다가갔던 것 같다. 물론 그러면서 난봉꾼, 찝쩍이 같은 이미지는 덤으로 따라왔고, 졸업 이후에도 그런 나쁜 XX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6~7 학번 아래 후배들에게 들었는데... 그렇게까지 내가 쓰레기였나 돌이켜 봤다.) 그래도 그때는 그런 박살나는 대외적 이미지 따위 생각하지 않고, 다가갔다는 게 참 신기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마음에 불꽃이 일까 하는 경외감이 든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그런 사랑은 다시 오지 않겠다는 막연한 절망이 머리를 휘감았다. 아니면 이제 철이 들어서 호감과 사랑을 구분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해 봤을 때, 나는 사랑을 시작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사랑은 내 인생에 없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