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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나의 젊은날을 찾아서...

지난 봄에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데 친구가 불현듯 얘기했다. "봄에는 이렇게 꽃이 예쁜데 나는 결혼하고 10년동안은 꽃을 본 기억이 없어..."


친구 역시 워킹맘이고 이미 결혼한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결혼하고 애 둘 낳고 키우면서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계절이 변하는지도 모르고 꽃피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랬다. 나는 애가 하나인데도 혼자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애를 키우면서 일하고 시댁과 친정일을 챙기다보니 계절이 바뀌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지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5년 정도까지 유행했던 가요, 영화, 드라마는 하나도 모른다. 난 그시절에 뽀로로밖에 본 기억이 없다. 나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다.   


물론 지나고보니 힘들었지만 그때가 아이가 가장 예쁘던 때이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는 부모들을 보면 아이는 귀엽고 예쁘지만 부럽지 않다. 


그러면서 친구는 얘기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늦게 결혼하니까 젊을 때 혼자 즐길 것을 다 즐기고 난 후라서 그 때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 오히려 나을까?" 친구는 당시만 해도 다소 늦은 편인 30살에 결혼했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자기의 젊은 시절이 너무 아깝다고 한다. 


늦게 결혼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물론 이전에 혼자 자기가 하고싶은 일도 맘껏 해보고 즐겨본 후라면 아쉬움이 덜할 수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기간동안의 어쩔수 없는 단절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기 시간과 일정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무력감과 단절감, 고립감을 느낀다. 권력관계에서는 권력을 지닌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의 시간과 일정을 통제한다. 퇴근 직전에 일거리를 주고 당장 해내라고 다그치는 상사를 생각하면 된다. 아내에게 의견 한번 묻지 않고 자기 맘대로 시댁 일정 등을 정해서 통보하는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상사나 남편같이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상대는 아니다. 오히려 약자이고 무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어릴 때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의 일방적인 요구에 맞추어 살 수밖에 없다. 아이가 잠잘 때, 배고플 때, 나가고 싶을 때..그러다보면 내 생활을 가질 수가 없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이고 일하는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혼자 집에 박혀 아이를 보고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어 생활하느라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자기 시간을 가지기도 어렵다. 일하는 엄마는 일하러 나가느라 바깥 바람을 쐰다고 생각하지만 하루종일 종종걸음치며 수시로 아이를 확인하고 자기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퇴근 후와 주말을 오롯이 아이에게 바친다. 이러다보면 10년은 그냥 지난다.


전업주부는 이렇게 10년을 보낸 후 아이가 사춘기가 되거나 훌쩍 커져서 엄마를 덜 필요로 하면 우울증을 느끼기도 한다. 워킹맘은 이즈음이 되면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젊은 날의 10년을 오롯이 바친 결과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남편에게 얘기하여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자기 시간을 확보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생산적인 일에 쓰면 좋겠다. 내가 자주 찾는 블로그의 주인분은 60대 원서 읽기 선생님이시다. 이분은 아이가 4살, 7살부터 하루에 1시간씩 자기를 위해서 시간을 떼어 독학으로 영어 원서읽기를 시작해서 10년 넘게 꾸준히 지속한 결과 10여년째 문화센터에서 원서 읽기 선생님을 하신다. 또다른 블로그에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새벽에 일어나서 책 읽기를 하고 투자 공부를 시작하여 부자가 되고 책을 쓴 분도 계신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소중하지만 힘들다.  이 시간에 꽃도 보고 세상도 보면서 자기 건강과 시간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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