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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먹을 결심

(그림책: 「마음먹기」)

by 안은주

결심이나 다짐을 우리는 ‘마음먹는다’고 말한다. 마음을 음식에 비유하듯 ‘먹는다’라는 표현을 관습적으로 사용해 왔으면서도 어느 날인가는 ‘마음이 먹을거리인가?’ 어린아이 시선의 의문이 솟는다. 게다가 실체도 없는 ‘마음을 어떻게 먹을까?’ 방법적인 측면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곧이곧대로 해석하려 들면 쓸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생활 밀착형 언어라고 표현한다. 생생한 삶의 장면과 말하는 이의 느낌이 찰떡처럼 언어 안에 스며들어 있다. 의미는 같으나 공기 중에 던져졌을 때의 밀도는 같지 않기에 우리는 ‘결심했어’, ‘다짐했어’라고 말하다가도 어느 순간에서만큼은 ‘마음먹었어’라는 표현으로 현재 내가 가진 마음 상태를 공고히 하려 한다.



이 그림책에서 마음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요리로 그려진다. ‘먹는다’는 표현의 직관적 해석인 셈이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달걀프라이 모양의 주인공은 자신을 ‘마음’이라고 밝히며 사람들이 자신을 가지고 ‘요리조리’한다고 말한다. 오르락내리락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의 부침 상태를 ‘요리조리’라는 부사를 통해 ‘요리’의 의미까지 담아 표현한 작가의 재치에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보이지 않던 마음은 음식으로 시각화되고 요리로 재탄생한다. 메뉴에 나열된 음식이름과 부제처럼 붙은 음식 설명에서도 작가의 언어유희는 이어진다. "마음진국-진심을 보여 주고 싶을 때, 마음피자-마음을 쫙 펴고 싶을 때, 마음덮밥-마음을 감추고 싶을 때..."

읽을 때 웃음이 터지면서도 재차 읽고 곱씹어 보게 하는 것이, 단순 언어유희 이상으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림책은 ‘마음이’의 시선을 통해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를 두드리기도 하고", "나를 뒤집기도 하고", "들들 볶고", "졸이고", "엄청 뜨겁게 데웠다가", "아주 차갑게 얼리기도" 한다. 여기서 ‘나’ 대신 ‘마음’을 넣어 읽으면 우리의 변화무쌍한 마음 상태가 일시에 수면 위로 드러난다. ‘가만가만 마음을 두드렸던 때’, ‘이전의 마음을 엎어버렸던 때’, ‘안절부절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던 때’,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던 때’, ‘화산처럼 분노를 키웠던 때’, ‘냉정하게 마음이 돌아선 때’처럼 각각의 마음을 가졌던 어느 시간대와 장소, 대상이 함께 소환된다. 그림책이 들려주는 글 속에서 당시에 격정을 온몸으로 부대껴야 했던 내가... 설명이 된다. 제 3자가 던지는 이야기는 그 내용이 품은 친밀성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화법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때와 같은 격정으로 후회하거나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


"새카맣게 태우게 되면"(마음을) 그림책은 "미련없이 버리고 새로 시작하라."고 말한다. 내 마음이 타서 색과 모양이 변질될 정도의 걱정과 고민이라면 내 삶에 유용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오른쪽 화면에 새로운 달걀을 신선하게 터트리는 그림이 이전 장면에서 보았던 까맣게 타버린 달걀프라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그림이 상징하는 것이 음식과 요리를 넘어 그것은 분명 ‘마음’이라고 동조하게 된다.


화면 왼편엔 요리의 기술을 오른편엔 요리하는 그림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면서 그림책은 전개된다. 글은 매우 짧고 기본 도형 몇 개를 사용하여 그린 그림은 흡사 이모티콘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책을 고민 없이 쉽게 집어 들고, 펼쳐볼 마음을 먹게 되는지도 모른다. ‘마음먹기’의 무거움은 먹고 소화가 되지 않을 우려에서 비롯된다.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가운데 기어코 결말을 보겠다는 비장함이 ‘먹는다’는 말로 표현된다. 마음먹고 시도한 일이 생각처럼 되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내 결연함이 무색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까맣게 타버리도록 놓아두지 말고 다시 새로운 ‘마음먹기’를 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그림책은 새로운 재료를 꺼내어 처음부터 요리를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요리가 끝난 음식들이 화면 가득 놓여진다. ‘이제 마음을 먹어 보세요.’ 그림책이 정중하게 권유한다. 어떤 음식이 내 식성에 맞을까.... 둘러보며 다음 장을 넘긴다. 음식이 놓였던 자리에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표정이 제각각이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세상 사는 맛이 달라진대요.’ 표정이 나타내는 바는 그 사람이 먹은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살이 맛이다. 다른 말로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책의 판형이 크지 않아 다른 책들 사이에 숨겨지기 일쑤인 이 그림책을 바쁜 일상 가운데 가끔 찾게 될 때가 있다. 누군가의 걸음과 행동으로부터 마음의 부대낌이 느껴질 때 이 그림책을 가볍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마음은 타인이 미루어 짐작할 바도 아니지만 정작 본인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에 위로나 조언이라는 명분으로 쉬이 다가갈 수 없다. 타인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마음먹기’ 재확인 또한 늘 필요하다. 그래서 이 그림책이 숨어 있는 책장을 어슬렁거리는 일이 수고스럽지 않다. 곡해 없이 재치와 해학으로 ‘마음먹기’를 풀어낸 이 그림책을 누구라도 펼쳐 볼 마음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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