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는 내내 아이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귀로는 내가 읽어주는 문장들을 담으며 그림 속 자기 또래의 아이가 보여 주는 행위에 글의 의미를 채워 나간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바쁘게 구사하던 아이가 어느 지점부터 눈시울이 불그스름해지면서 자꾸만 눈을 비빈다. 그림 속 아이의 소란했던 일상이 마무리되고 이불을 뒤집어쓴 머리맡으로 훌쩍이는 물기가 그림 밖으로도 전해질 즈음, 그림책 밖 아이는 허를 찔린 것처럼 찰랑하니 눈물 한 방울을 볼 위로 쏟아낸다. 천천히 차오르던 마음에 일순간 기습을 당한 아이는 당혹스러움으로 볼을 세차게 훔쳐낸다.
그림책 표지가 아이의 얼굴이다. 검정색 머리와 노란색 얼굴. 머리카락으로 표현된 흰색 세로선은 비처럼도 묘사되면서 제목 ‘눈물바다’를 전면에 드러낸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 그런데 두 눈에 물이 찰랑찰랑하다. 건물이 잠기고 사람과 물고기가 아우성치는 모습이 홍수라도 난 듯한 모양새다. 그런데 커다란 바나나 모양의 입은 두 눈이 표현하는 홍수 사태와는 어울리지 않게 활짝 웃는 형상이다. 아니, 비명을 지르는 입 모양의 착시 현상일까.
표지에서 점점 축소되어 작아진 아이는 표제지에 이르러 밤톨 모양의 얼굴을 하고는 독자를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확연히 웃는 입이다. ‘바다를 이룰 만큼의 눈물과 슬픔’을 제목에서 연상하였던 독자를 일단은 안심시킨다. 결말이 슬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독자는 표지 그림에서 느낀 아이러니와 제목에서 떠오르는 작은 심려를 단속하면서 그림책 속 그림과 글 안으로 들어간다.
표제지를 넘기면서 시작된 이야기 속 밤톨 얼굴의 아이는 매 순간 심기가 불편하다. 말 그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를 견디고 있다. 시험 문제는 답을 아는 게 없다. 점심때 받은 식판은 풀투성이다. 짝꿍의 영악함에 나만 걸려 혼난다. 때맞춰 하교 시간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나마 참을만했는데 교문 앞 우산 든 부모들의 대열에 저절로 몸이 작아진다. 덩달아 마음도 작아진다. 상자 하나 뒤집어쓰고 젖은 신발 치덕이며 도착한 집엔 반겨주는 이가 없다. 커다란 공룡 두 마리가 이빨과 손톱, 발톱, 기다란 혀... 온 몸의 날카로움을 앞세우고 마주 보며 으르렁대고 있다. 몸이 젖은 아이는 숨어들 듯 침대로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런데 젖은 건 몸만이 아니었다. 축축하게 젖어 들더니 밑바닥부터 채워지면서 점점 마음이 차오른다. 어두컴컴한 방, 네모난 창으로 엷게 뿜어져 나오는 위로의 빛 아래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다.
“눈물이 난다. 자꾸만..... 자꾸만.....” 창 밖의 달도 덩달아 울상이다.
그림책을 보던 아이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의 차오름으로 눈을 비벼대고 그것이 넘쳐흘러 볼을 문지르던 지점이다.
그림책 속 이야기의 반전이 시작된다. 밤새 훌쩍인 밤톨 아이는 아침이 되자, 침대가 배처럼 둥둥 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눈물이 바다를 이뤄 집 안의 모든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급기야 집 밖으로 넘쳐흘러 세상천지가 눈물바다가 되어 버린다. 온 세상이 때아닌 범람으로 아우성치지만 아이는 침대를 배처럼, 스키처럼 조종하며 자신이 흘린 눈물의 바다 위를 날아다닌다. 그림 속 밤톨 아이가 환호하는 표정인 것처럼 그림 밖 아이 표정도 대번 밝아지며 깔깔거리기까지 한다. 한바탕 눈물의 홍수가 지나간 자리, 밤톨 아이는 눈물에 휩쓸려 축 늘어지고 젖은 모든 것들을 끌어내어 하나하나 줄에 널고는 야무지게 집게를 집어 놓는다. 그렇게 눈물바다가 잦아들면서 밤톨 아이의 차오르던 마음도 차츰차츰 가라앉는다.
마지막 장, 넓은 여백 한가운데 작고 네모난 그림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말끔히 털어낸 밤톨 아이의 모습. 한 손에 든 드라이어가 아이가 털어내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차오르다 못해 넘쳐흘렀던 마음들, 슬프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상하고 서럽고 아픈 감정들. 그림책 밖 아이는 마지막 장, 그림과 함께 실린 “시원하다, 후아!”라는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 눈물이 만든 바다에서 한바탕 신나게 모험을 펼치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환상 그림책 정도로 생각한 것인지 “와! 재밌었다!”가 맞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아이의 눈엔 이제 붉은 기가 사라지고 없다. 대신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한 원래의 아이 눈 이다.
아이는 위로받지 못했던 서럽고 슬픈 감정을 그림 속 밤톨 아이에게서 발견한다. 같이 억울해하고 슬퍼한다. 그런 마음이 점점 차고 넘치더니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처음엔 민망하고 창피했는데 이상하게도 헐떡거리던 마음이 점점 차분해진다.
“다영아, 속상하고 슬플 땐 마구마구 실컷 울어도 돼”
아이의 슬픔과 눈물을 칭얼거림으로 여기고 짜증처럼 생각하는 어른들이 여전히 있다. 울면 안 된다고,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도 주지 않는다고 아이의 마음을 통제하면서 차오르고 넘치는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게 한다. 이유 없는 떼씀과 서러운 감정은 다르다. 눌러 담은 감정은 비대해지다 못해 마음 안에 천공을 낸다. 이제 감정은 예기치 못한 구멍으로 쏟아지게 된다. 쏟아내고 남은 자리는 공허해지고 아이는 자신을 키워갈 마음의 근력을 잃는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그림책 면지(표지와 연결되는 지면)에서 밤톨 얼굴이 사실은 눈물방울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앞 면지를 도배하고 있는 눈물방울은 말 그대로 ‘우는 눈물’이고, 뒤 면지를 채우고 있는 눈물방울은 눈물을 다 쏟아낸 후련한 ‘방울’이다. 아이는 수많은 눈물방울 가운데 손톱만큼 한 노란 얼굴의 주인공을 찾아내곤 으쓱한다. 이제 마음이 시원해진 아이는 그림책 뒤표지 주인공의 스마일 표정을 따라 지으며 교실을 나간다.
서현 작가가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을 마음이 차오르기 전에, 적어도 흘러넘치기 전에는 꼭 한 번 만나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