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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를 찾아서

(그림책: 「앵무새 해럴드」)

by 안은주 Jan 30. 2025

   해럴드는 모든 소리를 한 번만 들으면 곧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앵무새이다. 주인과 함께 거주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해럴드의 흉내 본능을 자극하는 소리는 현대 가전기기의 수까지 보태어 매우 다양하다. 소리의 수가 많을수록 그것을 구분하여 흉내 내는 해럴드의 재주는 더욱 빛을 발한다. 소리 모사에 다분히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해럴드. 특히 물소리를 좋아해 욕조, 세면대, 세탁기, 변기 근처를 날아다니며 기기가 분출하는 소리 못지않게 기계음을 재생하는 해럴드이다. 아파트 실내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해럴드. 



  

   앵무새 해럴드가 단지 소리를 흉내 내는 것에서 성취를 느낀다면 이 그림책은 ‘동물 앵무새’ 이야기로 읽힐 것이고 자연 혹은 생태 그림책으로 분류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 속 앵무새는 ‘따라 하기’에 싫증을 느낄 줄 아는 자기 인식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해럴드라는 사람 이름을 새에게 붙이면서 우리의 삶을 앵무새의 흉내 본능에 빗대어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우회적인 기법 대신 독자에게 직설적으로 묻는다. 모사의 삶에 만족하는지. 생태에 충실했던 앵무새의 행동이 자기 발견 이야기로 전회 되면서 독자는 해럴드에 자신을 이입하기 시작한다. 


   해럴드는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개수의 소리 흉내 내기에 지루함을 느낀다. 이러한 각성은 외부의 더 넓은 세상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부추기고, 열린 아파트 창 너머 바깥세상으로 시선을 돌릴 기회를 포착하도록 한다. 어느 날 아침, 창문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해럴드는 이제까지의 경험을 뛰어넘는 소리의 세계로 이끌리듯 진입한다. ‘아름다운, 저마다의 소리로 가득 찬’ 세상과의 조우는 해럴드에게 신선함과 충격으로 다가온다. 


   벽에 가두어진 소리의 음에 익숙했던 해럴드에게 무한대의 세계로 퍼져나가는 음의 파장은 놀랍고도 경이로웠으리라. 마치 우물 안에서 보았던 하늘의 크기가 밖으로 나왔을 때 경계를 지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라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더욱이 바깥세상의 소리는 실내의 기계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즐거운 소리, 슬픈 소리, 열정적인 소리...’라고 해럴드는 마음으로 소리를 인식한다. 버라이어티한 자연의 소리 속에 행복감을 느끼던 해럴드가 불현듯 긴장하게 된 건, 자연의 하나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식하게 된 순간이다. 세상 만물이 표현하는 소리의 일군에 해럴드 자신의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 따라 하기 급급하던 삶에 해럴드의 이야기는 흔쾌하지 않은 불편함을 안겨 준다. 보통의 평범한 삶이란 유사하다 못해 똑같은 것이라며 일정의 삶을 추구하던 이에게 그야말로 벼락같은 채찍이다. 그만그만한 옷을 입고, 그만그만한 음식을 먹으며, 그만그만한 소유물을 갖추는 동안 그만그만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애써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과 비슷해져야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림책은 독자를 겨냥하여, 뒷짐 지고 걸으며 생각에 잠긴 해럴드의 모습을 그의 이동 경로를 따라 아홉 마리의 새 그림으로 표현한다. 자신이 그만그만한 앵무새라는 사실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해럴드의 모습에 독자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틀림없이 나만의 소리가 있을 거야! 분명히 있을 거야!’ 해럴드의 목소리가 독자의 의중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궁리 끝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보기로 결심한 해럴드.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긴장과 기대감으로 세상에 처음 내보는 목소리는, 하지만 자신이 듣기에 너무 끔찍하다. 이제까지 들어 봤던 그 어떤 소리와도 닮아 있지 않다. 세상의 소리와 유사하지 않음에 순간 자신의 소리가 매우 형편없다고 생각하며 부리를 틀어막는다. 역시나 나의 소리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실망의 끝에, 앵무새의 자기 도전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멀리서 소리를 듣고 날아온 새의 무리를 통해 해럴드는 세상 그 어떤 소리와도 닮지 않았기에 자신의 소리가 독특하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인 해럴드가 소리를 흉내 내는 재주꾼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에서 소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소리’ 그 이상이라는 점은 독자도 충분히 인식할 것이다. ‘소리’는 ‘삶’의 은유적 표현이다. 앵무새 해럴드가 각종 소리를 따라 하며 재능을 인정받을 때, 우리는 타인과 유사해지려 기를 쓰며 그러한 삶을 유지하게 되었을 때 ‘잘 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주체가 내가 아닌 모사의 삶에서 기쁨과 만족은 바닥을 드러내고 해럴드가 바깥세상을 기웃거리는 것처럼, 우리는 낯선 세계를 향해 잠시 삶의 자리를 이탈한다. 사람 사는 모습 거기서 거기라지만 삶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는 지점은 모두 제각각이다. 겉으로 그만그만해 보이지만 내가 주체인 삶에서 나는 ‘소리’는 타인의 그것과 명확히 구분될 것이다. 다르다는 점이 더 낮거나 더 높음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타인의 삶과 유사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안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은 독특이며, 독특은 배제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가치에 더 근접하는 경우가 많다. 


   해럴드는 자신의 소리를 찾았지만 여전히 흉내 내는 일을 즐거워한다. 그의 흉내는 타 앵무새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자기 소리를 낼 때 해럴드는 가장 행복하다고 그림책은 마지막 문장에서 이야기한다. 확고한 내 목소리 위에 타인과의 유사성은 어울림이자 즐거움이 된다. 그것은 삶의 유연성이다. 




   알록달록 앵무새 한 마리가 시종일관 그림 속을 날아다니며 재주를 부리고, 고민하고, 노력하고, 시도하는 모습은 단순히 어린아이 그림책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앵무새의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깃털에 아이들이 호감을 나타내며 흉내쟁이에서 창조에 다다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읽는다면, 성인은 의중을 들킨 듯 불편해지다가 그림 속 귀여운 앵무새의 도전에 흐뭇해지며 슬그머니 내가 시도해 볼 꺼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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