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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Aug 19. 2024

그렇게 보살이 된다.

보살님들과 살고 있다. 남편을 필두로 그의 딸과 아들이 한화이글스의 팬, 그들이다.


내상을 입으면서도 고행길을 벗어나질 못하고 기꺼이 순교자가 된 남편. 5년 전 시작한 사회인 야구단의 영향일까, 깊어온 세월만큼 야구의 낭만을 알게 된 까닭일까, 하여간 지금 그는 야구에 되게 진심이다. 월요일은 야구 경기가 없어 조금 슬퍼하고, 화요일부터 일요일에 이르기까지 야구 경기를 보며 울고 웃는다. 주말은 사회인 야구단 경기를 뛰고 와, 이글스를 응원하려 리모컨을 드는 그의 진심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의 곁에, 태어나 보니 아빠가 한화팬이라 달리 선택권이 없었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는 어린 보살들이 있다. 본인들에게 대물림된 숙명을 다 알지 못하는 가여운 어린 보살들이 말이다.

 


그렇다면 보살들과 살고 있는 필자는? 빙그레 팬인 아버지 슬하에 자라 동전 야구를 즐겨하던 소녀는 20대를 야구의 냥만에 젖어 살았다. 퇴근 후 야구장에 들러 쥐맥(쥐포와 맥주)을 즐기던 전 SK의 딸. 목이 터져라 타자 응원곡을 불러대고 연안부두 떼창으로 마무리, 귀가하여 말끔히 씻고 침대에 누우면 하루가 그렇게 완벽할 수 없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다만 공교롭게도 광현님 유니폼을 장착하고서 그의 부진이 시작되어 팀의 승리를 위해 은둔자의 삶을 선택했고, 유니폼을 고이 접어 장롱에 모시고 그러다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육아도 하고 그랬더랬다. 그러는 동안 야구에 대한 애정도 그 세월과 함께 묻혀 고작 나의 지조가 요만큼이었다는 것이 부끄러워 어디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내가 보살들과 살게 되다니.



어느 날 TV중계를 보던 어린 보살들이

 "직관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무심코 흘린 말을 애들 아빠가 덥석 물어버렸다.

"아빠가 데려가 줄까?"

물론 그의 사심을 내 모를 리 없지만, 전직 야구장죽순이에게도 언제나 그리운 그곳의 공기인 것을.


홈구장에 원정을 가기란 가히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보살님들의 티켓팅 전쟁에서 티켓을 거머쥘 확률이 희박하거니와, 영동고속도로를 타다가 중부로 빠져 장장 4시간 정도 달려야 하니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출발해도 6시 경기 시작 전 대전 안착이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 보살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이들, 그 어려운 일을 해내어 기어이 대전구장에 입성했다.


이글스에게 컬러테라피를. 님아 그 색을 걸치지 마오.

녹색 잔디가 드넓게 깔린 운동장,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사람들,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연대의 함성까지. 장소와 대상이 달라졌을 뿐, 야구장의 낭만은 여전했다. 썸머블루 스페셜 유니폼을 입고 그즈음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던 한화. 역시나 주황색 유니폼을 입어서 그런지 안타깝게도 승리의 요정은 그날 우리를 비껴갔다. 아무래도 한화 선수들은 여름의 열기에 취약하여 블루계열의 컬러 테라피가 필요한가 보다는 심심한 농을 주고받으며, 졌지만 잘 싸웠다, 보살스럽게 경기장을 나왔던 밤.  


 

털레털레 밤거리를 걸어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보살님들을 보, 하루이틀 다져온 것이 아닌 오랜 세월에 다져진듯한 보살들의 내공에 마음이 다. 차를 스쳐가는 보살들의 발걸음에 승리의 기쁨이 묻어나진 않지만, 걸음 걸음이 너그럽고 진득하여 정스럽달까.


혹자는 보살이라 불리는 것 조롱이라며 속이 터진다 말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보살'이라는 말에 정이 간다. 변치 않는 한 가닥의 마음을 오래 품기 어려운 이 시대에 지치지 않고 열렬히 응원하는 하나의 팀을 갖는다는 것,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 자체를 즐기며 함께 가는 것,  보살의 마음이말로 어려운 시대를 살가는 데  필요한 음이 아닌가 다. 



월요일은 야구 경기가 없어 쓸쓸하다고 슬퍼할 보살군단의 귀가를 기다리 시간, 나 또한 운명을 돌고 돌아 빙그레의 태초부터 시작된 이 거스를 수 없는 연대의 숙명을 께 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다. 야구는 9회 말 2 아웃부터 라지 않는가! 가을 야구의 기적을 바라며 그렇게 나도 보살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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