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장 속에 살고 있다.
그리운 구남친, 어딜 가면 볼 수 있는지
남편의 장(腸) 속에 살고 있다. 같이 있으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뀌어대는 방귀와 트림 덕에 남편의 장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하는 것. 대부분은 무취라 다행이지 빈도만큼 지대한 존재력을 뽐내는 녀석들이었다면 후각이 예민한 나로서는 상당히 괴로웠을 일이다.
그는 흡입하여 먹는 버릇이 있다. 커다란 입을 동그랗게 벌려 어떤 음식이든 깔끔하게 한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는 특기를 가졌다. 그런 남편이 음식과 함께 삼키는 공기의 흡입량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은 오랜 시간 곁에서 그를 관찰한 결과로 그것이 '공기연하증'일 것이라 최근 탐구보고서를 올렸지만, 건강 상 어떤 이상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남편으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집 방귀대장 뿡뿡이의 삶을 즐겁게 살고 있다.
"잘 지내셨어요?"
깎아놓은 밤톨처럼 생긴 그가 내 인생에 천연덕스럽게 등장했던 날이 떠오른다. 사는 게 전쟁통이라 차일피일 미뤘던 친구의 대학 동아리 일일호프에서 그와 나는 만났다. 여름이 끝나가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무렵의, 오늘 같은 밤.
어두컴컴한 호프집의 노란 조명, 공간을 채웠던 2000년대 초반의 가요, 싱그러운 청춘과 낭만의 취기는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조합이었다. 돌아갈 길이 먼 낯선 동네에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던 걸까, 아니면 그의 등장에 긴장했던 것일까. 그날의 두근거림은 십수 년의 세월에도 생생하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그란 눈, 코, 입. 특히나 동그란 눈은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길어져 가뜩이나 서글서글한 인상에 유함과 너그러움이 넘쳤다. 웃을 일이 뭐 그리도 많았는지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아, 세상이 온통 웃음꽃 피는 꽃밭이었던 날들. 불안이 많은 내게 언제나 긍정과 희망을 말해주던 구남친, 그와 함께라면 이 험한 세상도 용기 내어 살아 볼만도 할 것 같았다.
괄약근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오랜 연애에도 실례될 일 또한 잘 조절했으니, 6년의 세월 동안 속 시원히 배출하지 못한 방귀와 트림이 수백 개는 되었을 것. 그러다 결혼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그가 처음으로 방귀를 뀌었다.
"빡!"
크고 강렬한 소리에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 민망한 순간을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냄새마저 강렬했다면 솔직히 말해 조금 실망했을 것 같지만 다행스럽게도 방귀는 흔적을 남기지 않아 방귀대장 뿡뿡이 정도로 귀엽게 여겼다. 그렇게 열린 대서사의 서막으로 그 후로 오랫동안 그의 장 속에 살고 있다.
장 활동이 왕성한 젊은이가, 게다가 공기연하증으로 주기적으로 소화기관의 공기들을 배출해야 하는 그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잃지 않으려 다했을 노력은 참으로 가상하다. 왜 때문에 여직까지 그것들을 트지 못한 것인지 세 곱절은 될 나의 노력 또한 가상히 여기며, 어느 때 서막을 열어야 할지 괜찮은 타이밍을 보고 있다. 그에게도 내 장을 내어줄 날이 언젠가는 올 텐데, 불혹의 아줌마도 이런 면에서는 소녀의 마음처럼 수줍다.
"꺽~."
"오빠 마늘 많이 먹었지? 사람 되겠네~"
나의 예민한 후각 레이더는 남편의 트림에서 남편이 챙겨 먹은 메뉴들을 분석하여 피드백을 주고, 남편은 이를 기민하게 캐치한 아내를 흡족하게 바라본다.
"뽀~옹"
"피리 부는 거야?"
이어 방귀도 뀌며 위아래로 아주 난리다. 애들도 방귀와 트림은 싫다며 난리지만, 아이들의 이런 반응에 신난 남편의 방귀소리는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자신의 방귀와 트림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아무 반응도 없으면 내심 섭섭해하는 방귀대장 뿡뿡이는 가족들의 반응에 오늘도 행복하다. 부디 뿡뿡이의 불로장생과 우리의 백년해로를 기도하는 밤, 밤공기가 제법 시원하여 십수 년 전 등장했던 구남친이 문득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