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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Sep 03. 2024

또 월요일 저녁은 비빔밥이다.

한 주를 시작하는 엄마의 월요루틴

우리 집 마흔이들의 일주일은 '또월'과 '벌목'으로 흐른다.


"또 월요일이야!" 일요일 밤, 남편은 깊은 한숨을 담은 탄식으로 월요일을 맞는다. '또월'은 "또 월요일이야!"를 줄인 우리집 상용어. 언제고 그리워질 월요일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리 홀대를 하고 있으니 일요일과 월요일의 경계에서 괜스레 월요일에 미안해지곤 한다.


그렇다면 '벌목'은? "벌써 목요일이야!"을 줄인 말. 유수같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놀라움을 담은 표현으로 무사 일주일을 잘 보내고 있다는 감사의 말이기도 하다. 큰 일 없이 보통의 일상을 맞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는 종종 잊는다. 보통의 일상을 잃고 나서야 그 감사함을 깨닫다 보니 '벌목'에 보이지 않는 감사를 얹는다. 벌써 목요일을 맞이하고 나면 금요일을 스쳐 주말을 보내고, 다시 또 월요일을 맞는, '또월'과 '벌목'의 도돌이. 그리고 또 월요일의 우리집 저녁메뉴는 비빔밥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주말을 복닥복닥 높은 밀도로 산 엄마는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 후, 비로소 혼자가 된다. 한숨 돌릴 때쯤 보리차 끓일 물을 올리며 시작되는 월요 루틴.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건조기도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부지런히 우리네 인생사도 돌리다 보면 끓여둔 보리차가 한 김 식어 냉장고에 물통을 넣는 일로 집안일은 마무리된다.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을 소중히 맞는 엄마의 월요일루틴 주말 동안 엉망이 된 집을 깨끗한 일상으로 데려온다.


이어 주문할 물품을 주문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중간중간, 머물다가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이번 주 아침과 저녁을 어떤 메뉴로 준비할 것인지, 언제 월요일 연재글을 어떤 내용으로 쓸 것인지. 그리고 또 그 중간중간 아이들 하교 후 학원 라이딩도 하고, 중간중간 글을 쓰다 보면 5시. 수학학원이 끝난 딸아이를 집에 데리고 오는 것으로 바깥 일정은 끝난다.  


또월에 비빔밥이 아니던 시절에는 아이를 데리고 와 부랴부랴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어 이것저것 만드는 통에 월요일의 부담이 은근했다. 메뉴를 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 생각도 들지만, 점점 더 멀티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마흔이에게는 이게 뭐라고 부담이 된다.


아이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비빔밥을 우리집 월요일 저녁 메뉴로 공포하고 나자, 월요일의 마음이 한결 가볍다. 메뉴 선정의 고민 없이 자연스레 저녁 준비로 부엌에 입장한다.


소고기 밑간을 해 재워 두고 당근, 양파, 애호박을 손질하여 각각을 소금 조금 넣어 휘리릭 볶는다. 고추장에도 참기름과 깨, 버섯가루, 매실청 등을 조금 더해 감칠맛이 나는 양념장을 만들어 두고, 계란후라이를 반숙으로 부친다. 반숙후라이의 노른자를 툭 터트려 비빔밥에 서걱서걱 비벼 먹는 맛을 아는 남매의 특별 요청 사항인 반숙은 특히나 심혈을 기울여 부친다. 설거짓거리를 줄이려 하나의 프라이팬에 색이 연한 채소부터 볶고 볶고 부치다, 마지막으로 고기를 볶는 것으로 또월의 비빔밥은 준비 끝. 색도 곱고 준비도 쉬운데 항시 맛을 보장하니, 또월요일 저녁의 메뉴로 적당하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남편과 아이들이 귀가하여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도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물론 잘 섞은 비빔밥을 한 숟갈 푸짐하게 올려 와구와구 먹은 배부름도 한 몫했을 테지만 말이다.


비빔밥이 간단한 것 같지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 아냐며 보이지 않은 정성을 알아봐 주는 남편도 고맙고, 양파와 당근을 볶은 자연의 단맛이 이리도 맛있을 일이냐며 건강한 입맛과 식습관을 쌓아가는 아이들도 고마운 시간. 건강하고 든든하게 채운 밥심으로 또 일주일을 잘 살아낼 일이다.


월요일의 비빔밥으로 '또월'을 보내고 '벌목'을 향해 달려간다. 한 주를 시작하는 엄마의 월요루틴은 이렇고. 또 다가올 월요일도, 월요일의 비빔밥도, 감사한 보통의 날들을 보내고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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