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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Sep 09. 2024

보리차와 하마와 허무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끓인다.


스텐 들통에 물을 받아 인덕션에 올려놓는다. 팔팔팔 물이 끓으면 끓임망에 볶은 보리알갱이를 넣어 십 분 정도 우린다. 한 김 식으면, 유리병에 옮겨 담고, 한 잔은 따땃하게 마신다. 어느 정도 식으면 열이 많은 우리집 하마들을 위해 냉장고에 넣는다. 하마들을 기다리는 보리차.


속 시끄러운 월초였다. 월말과 월초는 으레 바쁜 것으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월세이체와 비품구매를 싹 마쳤는데도 개운치 않았던 것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종합소득세 분할납부의 2차 납부를 작년에 이어 또 깜빡했던 것. 상상할 수 없는 이자를 치르고 얻었던 값비싼 경험을 잊고, 또 말이다. 작년은 그럴 만도 했다 치지만 올해는 명목이 없다. 엄연한 나의 불찰.


사람은 누구나 한두 번씩 실수할 수 있다며 아이들을 위로하곤 했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괜찮다는 위로에 일 그람의 위안도 얻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졌더랬다. 따박따박 근로소득세를 떼이던 삶이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지는, 종소세를 깜빡 이자에 벌벌 떠는 나의 그릇이란. 또다시 홀쭉해진 텅장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마음이 허무주의로 흐를 것 같아 보리차 한 잔을 더 마셨다.


이번 찾아온 허무의 기원은 최근 완독한 코스모스에서 였던 것 같다. 더 잘 담기 위해 몇 번 더 품어야 할 것 같지만, 수백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 찰나의 순간을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가, 그리고 오늘이 소중하기도 허무하기도 했다.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던 역사 속에 어느 정도 되찾은 안정도 가끔은 이렇게 흔들리는 까닭에, 삶의 여러 대척점들로부터 그 밸런스를 항시 생각한다.


교실 속 아이들의 '어차피' 말장난에 장난스레 던졌던 말들을 기억한다. "어차피 내려올 거 안 올라가면 안 돼요?", "어차피 안 될 거 안 하면 안 돼요?" 그 어린 아이들이 벌써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안타까워, 어차피 똥으로 나올 거 왜 먹느냐,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냐 던졌던 물음표를 나에게 던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기억해 본다.  

 

내일이면 사라져 버릴 보리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끓인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다시 물을 팔팔팔 끓여 보리를 넣어 우리고, 한 김 식혀 빈 유리병에 새로운 보리차를 가득 채워두겠지. 잊지 말자.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구수한 보리차를 좋아하는 하마들과 공유할 수 있음은 나에게 기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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