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여파에서 여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가족들이 먹는 끼니임에도 음식을 하는 것에서부터 설거지를 하기까지 그 과정들은 왜 이리 고단하고 번잡스러운지. 손이 마를 새 없이 축축한 명절이었다. 한바탕 모이면 매번 되풀이로 읊어지는 서사들은 나름대로 변주가 된다마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얘기들임에도 경청하고 앉아 명절 내 그리워했다. 단호박을.
간단하게 조리해서 풍부한 영양소 섭취와 더불어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들은 혼자 먹기에 제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차려 먹는 끼니에 단호박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여름부터 제주에서 단호박을 박스로 구매해 단호박 러버의 삶을 사니 혼자 먹는 한끼가 부담 없다.삶도 단호하게 단호박으로 살고 싶었는데 실상 삶은 단호박이나먹고 앉아 있으니,단호박의 삶은 어쩐지 가까우면서도 요원하다.
작은 찜기 7분 정도 찌거나 렌지에 5분 정도 돌리면 쪄지는 단호박은 그 자체로도 포근포근하고 달짝지근하여 맛이 좋다. 후숙하여 먹는 단호박은 밤과 고구마의 맛이 나기도 하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만들어 둔 여러 소스나 과일, 견과류 등을 곁들여 먹으니 자주 먹어도 먹을 때마다 새롭다. 시금치 피자에 바르는 그릭요거트-꿀-후추소금의 소스는 단호박에도 참 잘 어울려 피자를 만들어 먹고 남은 소스를 단호박과 함께 즐기고 있다. 구운 캐슈너트와 아몬드, 단호박의 조합도 고소하면서도 달달 담백하여 괜찮은 한끼가 된다.
최근 찾은 최애의 조합은 브라타치즈와 단호박. 브라타치즈의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달콤 담백한 단호박과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단짠단짠 콜라보를 이루니 간단하게 먹는 한끼에서 촉촉함과 부드러움, 짭짤함과 달콤함 모두를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럽다. 간단하면서도 건강한 한끼로 안분지족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베타카로틴 어쩌고 저쩌고, 항노화와 면역력 증강, 항암과 항산화 물질들을 떠나, 준비 과정과 먹는 즐거움만으로 단호박러버가 되지 않을 수가.
늦여름 친정 엄마의 생신을 시작으로 가을 동안 축하할 양가 어른들의 생신과 남편, 아들의 생일까지 무던히 잘 치를 각오로 제철을 맞는 단호박을 한 박스 더 주문한다. 삶은 단호박의 부드러운 결처럼 단호박을 한 입 머금는 나의 마음도 부드럽기를 바라며, 무던한 성실로 임하기가 어렵지 사라지기도 살아지기도 쉽다는 것을 알아 월요일의 다짐을 기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