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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Oct 07. 2024

뜻밖에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시내의 방문은 주차가 문제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돌다 돌다 유료주차장에 들어갔다. 만차라 빙빙 주차장을 돌며 곤란해하고 있던 차에 구원의 아우라를 뿜으며 다가와 인근의 차에 타는 구세주를 발견, 곧 출차하신 그분 덕에 서둘러 주차를 했다. 30분에 천 원의 기본료에 십 분마다 천 원의 요금이 추가되니 서둘러 볼 일을 보고 왔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내가 주차해 둔 자리의 뒤차는 주차를 하려 하시는 건지, 출차를 하려 하시는 건지 차를 넣었다 뺏다 연신 앞으로 뒤로 가기를 반복하다 내가 다가가 차문을 열자, 출차를 하신다. 운전석에 앉았다가 쎄~한 기분에 나가 차를 한 바퀴 돌아보니, 뒷 범퍼에 쿡, 무언가 들이받은 자국이 있다. 바로 전 날 세차를 했던 터라 방금 생긴 자국임을 확신했고, 분노가 솟구쳤다.


주차장 주인분께 cctv확인을 요청하려 전화번호를 찾으러 주차정산기가 붙어 있는 차단기 쪽으로 향했다. 방금 차 뒤에서 차를 앞으로 뒤로 움직이다 결국 출차를 했던 차가 차단기를 통과해서도 갈 길을 안 가고 가만있는 것 아닌가. 갑자기 운전석 창문 열리며 "무슨 일 있어요?" 조수석의 중년 여성이 묻는다. 운전자인 중년의 남성은 정면을 응시하며 고개조차 돌려 보지 않고.

"차 뒤 범퍼를 누군가 박고 가신 것 같아서요."

"우리같이 좋은 차는 막 어디 박거나 그렇지 않아요." 구시렁구시렁하시길래,

"그쪽이 박았다고 말씀드리진 않은 것 같은데요? 저는 다만 주차장 주인분 연락처를 찾으러 왔거든요."

"아니 근데, 왜 차를 그렇게 대요?"

"네?"

"차를 너무 뒤에다 대고."

"저는 차를 주차라인에 맞추어 댄 것뿐이고요. 주인분께 cctv 요청드려야 해서~."

정산기에 붙어 있는 번호를 눌러 통화연결음이 울리자 검은 벤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주차장의 주인분은 주차 관리업체의 번호를 알려주시며 그쪽으로 문의를 하라 했다. 주차장 관리업체의 담당자는 cctv 열람은 민감한 부분이라 먼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경찰에서 요청하면 그때 cctv를 열람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주차를 했던 것도 아니고 유료주차장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생각하고 주차를 했건만, 이런 복잡하고 무성의한 대응에 경찰서를 갈 것인가 고민이 깊어졌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블랙박스를 돌려보자, 충돌의 기록이 없다. 올여름의 폭염으로 블랙박스도 불안 불안했던 터인데, 후방 카메라는 아예 녹화도 안 되어 있어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기본료에 추가 요금까지 두둑이 내고 나올 무렵, 주차장 관리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주하필 내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가 사각지대라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요청을 해도 소용이 없을 거다.     


상황을 곱씹고 차를 살필수록 분노게이지가 올라 경찰서를 갈까 말까 하다가 고민해결을 위해 남편에게 까톡을 보냈다. 사진 전송과 더불어 차마 입 밖으로 날리지 못했던 육두문자들을 정성스레 한 글자 한 글자 쳐서. 잠깐의 짬에 사진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온 남편.


"너무 화내지 말고~ 차 바꿀 때도 되었잖아. 더 좋은 차로 바꿔줄 테니 너무 속상해 말고~."


우리 집 재정 상, 차를 바꾸는 일은 향후 3년 안에는 없을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아내를 달래려 그냥 한 말일테지만 너무도 쉬운 나는 또 남편의 말에 온 가슴 안에 활활 타오르던 분노의 불씨가 파사삭, 사그라들었다. 남편의 온화하고 거대한 사랑 앞에 쓰나미 급의 분노가 사그라드는 마법을 경험하고는, 중년의 나도 너무도 메말라 있었나 싶다.


뜻밖 사랑을 확인 순간이 하필이면 애정하는 차의 사라지지 않을 상처와 동시에 온 것이 하지만 증은 내어서 무엇하리. 나의 정신 건강만 또 헤치는 것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사랑을 담뿍 담은 저녁상을 준비한다. 당분간은 속이 쓰리니 차 뒤쪽은 보지도 가지도 말아야겠다 다짐을 하며 심증만 가득한 내 뒤 범퍼를 박고 간 누군가의 인과응보를 위한 조용 기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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